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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스포츠 묘미 ‘언더독 반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면 사치분교, 혹은 ‘섬개구리 만세’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50년 전 일이다. 전국소년체전이 처음 출범했던 1972년 전라남도 땅끝 신안의 작은 섬 사치도의 사치분교 농구부 선수들이 내로라하는 뭍의 강자들을 잇달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일화 때문이다.

당시 부부교사가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농구대도, 코트도 없는 작은 섬의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서 믿기지 않는 연승 끝에 결승까지 오른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웠다. 비록 부상선수가 속출한 바람에 결승에서 계성초등학교에 패했지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누구나 질것이라고 예상한 팀이 이기는 것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사치분교는 몇년 뒤 다시 한번 결승에 올랐지만 이번엔 상명초등학교에 고배를 마셨다. 당시 언론의 시선이 집중된 경기에서 사치분교에 패배를 안겼던 상명초등학교 선수가 유재학 현 모비스 총감독이었다.

스포츠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객관적으로 강한 상대가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 누가 봐도 약자인 팀이나 선수가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이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6 WBC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지구올스타’로 불렸던 미국대표팀을 꺾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겼고, 이는 한국야구 100년사에 가장 놀라운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가장 투자 많이 하고, 가장 비싼 선수 많이 데리고 있고, 가장 훌륭한 경기장을 갖춘 팀이 늘 승리하고 우승한다면 리그를 하고 대회를 치를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꼴찌팀이 1위팀을 꺾기도 하고, 후보 선수가 영웅이 되기도 하며, 만년 패전투수가 강팀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는 것, 이런 이변과 반란이 팬들로 하여금 스포츠에 빠져들게 한다.

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20위 팀도 1위팀을 이기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파리 생제르맹이나 바이에른 뮌헨 같은 절대강자가 존재하는 프랑스 리그1이나 분데스리가의 흥미가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기는 라이벌전도 있겠지만, 필자는 시즌 최종전이라고 생각한다. 강등위기에 몰린 하위팀들이 잔류를 위해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경기를 펼친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2022 프레지던츠컵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선수가 4명 속해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최강 미국팀에 비해 전력이 약했던 인터내셔널팀의 활약을 응원하는 것이 대다수 골프팬의 심정이었으리라. 미국인은 제외하자. 게다가 인터내셔널팀의 주력선수로 기대했던 캐머런 스미스, 에이브러햄 앤서 등이 LIV골프로 빠져나가 버렸다. 8연속 우승을 차지한 미국의 손쉬운 승리가 점쳐졌다.

아니나 다를까, 개막 이틀간 열린 10경기에서 미국이 8-2로 앞서나갔고, 일부 미국 언론은 8경기가 열리는 3일째 미국의 우승이 확정될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인터내셔널팀의 막내 김주형이 하루 2승을 거두는 등 7-11까지 인터내셔널팀이 따라잡았다.

마지막 날 12개의 매치에서는 김시우가 전 세계 1위 저스틴 토머스를 꺾는 등 한국선수가 3승을 거두며 미국을 괴롭혔다. 김시우의 세리머니에 토머스가 화를 냈다지만, 이 역시 강자를 꺾은 약자의 권리라고 보고 싶다. 우승은 미국이 차지했지만, ‘언더독’ 인터내셔널팀은 잃은 게 없다. 오히려 커다란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유망주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로 남았다.

예상이 빗나가는 것,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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