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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아트페어

‘풀밭 위에 점심식사(Luncheon on the Grass)’는 ‘올랭피아’와 마찬가지로 도발적인 누드화다. 얼굴을 꼿꼿이 들고 관람객/소유주를 쳐다본다. 남성을 위해 그린 여성 누드화이지만 기존의 누드화와 판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드화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남성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863년 마네가 그린 그림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러 우리나라 가전 광고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등장한다. 100년 전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서양 남성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국사람은 익숙한 누드화 속에 있는 세탁기에 주목한다. 유화에서 광고로 전환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예술작품과 광고를 결합한 것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광고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때 자유란 구매자에 의한 선택의 자유를 뜻한다. 또한 제조업자들에 의한 비즈니스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광고는 오직 한 가지만을 제안한다. ‘더 많이 사라. 인생이 달라진다.’

다른 한편으로 유화와 광고는 서로 상이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유화는 시장 밖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에게 호소하지만, 광고는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에게 호소한다. 유화의 시제는 현재이지만, 광고는 항상 미래를 말한다. 미래의 이상적인 삶에 이끌리게 함으로써 현재에 불만을 갖게 하고, 동시에 더 많은 구매를 통하여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광고는 자본주의 문화의 생명이고, 자본주의는 광고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대다수 사람이 돈만을 생각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살아남는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한 거짓 기준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는 계속된다. 기술복제 시대에 넘쳐나는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세상을 다 바꾸고 싶은가? 당신도 이미지로 말하라! 이미지를 글자로 배우지 말고 이미지 언어를 읽으란 뜻이다. 이 이미지 언어 읽기를 비즈니스에서는 디자인 경영이라 하고, 갤러리에서는 예술적 감수성이라 하고, 우리 시대는 감성지수(EQ·Emotional Quotient) 또는 창의성이라 한다. ‘이미지를 더 잘 읽어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세탁기가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를 눈여겨본다.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렸다. 개최 원년이지만 성황을 이뤘다. 함께 개최한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프리즈를 찾은 화상들은 키아프를 놓치지 않았다. 역대급 미술품 거래라는 말이 나온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아시아 아트페어 허브는 홍콩이었다.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 10년 전 도쿄에서 부산으로 아시아 영화시장 허브가 바뀐 이래 두 번째 사건이다.

전쟁·인플레이션·환율 등 리스크에 몰입하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를 차지할 주인공은 이미지에 몰입한 사람이다. 진경산수화가 동아시아를 사로잡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대 전란 위기에 맞닥뜨린 조선은 흩어졌다. 진경산수화가 우리 강산을 빼어나게 그렸다. 조선을 다시 하나로 모았다. 김환기 전면점화, 박수근의 질감, 군국주의에 맞선 이중섭의 힘차고 순박한 황소, 봉준호의 ‘기생충’, 황동혁의 ‘오징어게임’ 등 한국이 창조한 이미지가 열고 있는 새 시대를 고대한다. 그런데 우리만 냉정하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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