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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엔 신라 궁성 외에, 둘레 2.4㎞ 고려 읍성도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경주시 5차 발굴
읍성 동벽의 세부 실체 440m 확인
밀림방지기술 적용,곳곳에 방어용 雉(치)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경주엔 신라 궁성인 월성 말고도, 고려시대 읍성이 별도로 존재했고, 동벽 길이만 624m인데, 이중 440m의 세부 실체가 한국문화재재단과 경주시의 5차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전체 읍성 성벽의 둘레는 동벽 약 624m, 서벽 약 612m, 남벽 약 570m, 북벽 약 606m로 네 벽 총 길이는 2412m로 추산됐다.

경주읍성 5차 발굴구간
지적도상 경주읍성의 둘레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과 경주시(시장 주낙영)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진행한 사적 경주읍성 5구간 계림초등학교 동·북쪽 외곽, 길이 약 200m, 면적 5887㎡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완료한뒤 이같이 밝혔다.

이번 5구간은 경주읍성 범위 중에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구간으로 성벽의 면석이 12단으로 제일 높으며, 그 높이는 약 2.2m 정도이다.

2018년에 복원정비가 완료된 동문(향일문, 向日門)과 일부 동벽의 북편 끝까지와 북벽도 일부 포함하고 있으며, 이번 발굴조사로 동벽 남단부 일부를 제외한 전체 약 440m 정도의 경주읍성의 동벽 실체 대부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지적도와 잔존하는 성벽 및 발굴 자료를 종합하여 추산한 동벽 전체 길이가 약 624m 인 것을 감안하면 2/3가 넘는 규모다.

이번 조사의 성과는 경주읍성 문헌기록인 고려 현종(顯宗) 3년(1012)에 처음 토성(土城)을 쌓고, 고려 우왕(禹王) 4년(1378)에 석성(石城)으로 고쳐 쌓았다는 기록상의 개축 양상을 동벽에서 명확히 확인했다는 것이다.

북벽은 동벽 아래의 토성 흔적이 이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석성으로 쌓은 것이 확인되어, 현재 읍성 범위로 파악되고 있는 개축된 석성의 범위와 평면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경주읍성 북동쪽 모서리

또 동벽의 대부분이 편축(片築:한 쪽 벽만 돌을 쌓아서 만듦) 방법으로 개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석성으로 개축시 동벽쪽은 토성의 외벽 쪽은 절개하고 내벽쪽은 토루(土壘:토성의 벽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겹의 흙으로 다져 쌓은 구조물)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북벽쪽은 바로 쌓아 올렸으나 벽석(壁石) 축조방식에 있어서는 외벽만 석축으로 하고 내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우는 편축 방법은 동일한 양상이다.

처음 석성으로 개축시의 벽석은 동벽과 북벽에서 아래 3단 정도만 남아 있고, 그 위로는 조선초기와 조선후기에 수축(修築:집이나 다리, 방죽 따위를 고쳐 짓거나 보수함)된 성벽으로 확인된다.

수축된 성벽도 외벽만 석축으로 쌓는 편축 방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내탁부(內托部:성벽 구축 시 성 내벽을 구축한 부분)에 일정 높이 마다 석축열(石築列)을 만들어 내부 판축토(版築土:건축물의 기단이 되는 판판하게 다진 흙)의 밀림을 방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발굴팀은 이와함께,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성벽의 모서리는 직각을 이루지 않고 둥글게 축조한 양상을 확인했다. 이는 경주읍내전도(1798년) 의 도상에 표현된 직각의 모습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경주읍내전도는 정조(正祖)에게 올린 집경전구기도(集慶殿舊基圖)내의 것으로 당시 경주 읍내의 고분군 및 산천의 모습과 함께 읍성 성곽을 뚜렷하게 구획하고, 내부에 여러 건물까지 매우 사실적이고 상세하게 그린 그림이다.

경주읍성 동벽 부분

체성벽에서 달아내어 축조한 치(雉:성벽에서 주로 방형 형태로 돌출시켜 쌓은 방어시설)의 기단부가 동벽쪽에서 2개, 북벽쪽에서 1개가 확인되었다.

이번 동벽쪽의 2개는 이미 발굴되어 복원된 동문 북편의 첫 번째 ‘치’ 다음의 것이다. 이로써 동문 북편에 존재했던 3개 치의 위치가 모두 정확히 확인됐다. 거의 75m 간격이다.

이 3개의 치 중 가운데 것에서는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사용되었음이 알려진 바 있다.

그리고 북벽의 치는 북벽의 동편 첫 번째 치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치는 모두 일제강점기의 지적도상에 표시된 위치와 일치한다. 또한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모서리 부분에는 이를 감싸는 평면 말발굽 모양의 기초석 범위(길이 10m, 너비 10m)가 확인되었는데, 성우(城隅:모서리에 있는 치)로 판단되며, 일제강점기 지적도에는 표시가 없다.

1798년에 그려진 경주읍내전도

이와 같은 경주읍성 5구간에 대한 발굴결과와 그 성과는 향후 경주시의 동문(向日門) 북편의 동벽과 북벽에 대한 복원․정비 시 읍성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진행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본다고 한국문화재재단과 경주시 발굴팀은 밝혔다.

이번 경주읍성 5구간 발굴조사는 경주 읍성의 복원·정비를 위한 기초 학술자료 확보를 목표로 2019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오는 29일 오후 2시 경주 읍성현장 사무실(계림초등학교 북편)에서 진행되는 공개설명회에서는 관련 전문가와 지역민들에게 발굴조사 결과와 성과를 출토유물과 함께 보다 자세하게 알려줄 예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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