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가족은 어떤 의미로 하나의 재난일지 모른다
사비나미술관, 홍순명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
100개가 넘는 조각 그림으로 완성한 2020년 호주의 대형산불 풍경.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작업하는 이유에 대해 홍순명작가는 “여러조각으로 나누면 사물의 정의와 조건이 사라진다. 정보가 사라진 것을 그릴때 붓질만 남아 그림과 회화라는 추상적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조각은 추상화이나, 일정한 질서에 따라 모이면 풍경이 된다. 홍순명, 불, 캔버스에 유채, 300x1200cm, 2022 [사진=사비나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1930년대에 태어난 어머니가 겪은 대한민국은 1960년대 태어난 아들이 겪은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둘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다른’ 나라에서 살았기에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90먹은 노인은 나무라고 60먹은 아들은 반항한다. 웃지 못할 희극의 풍경은 사실 내 가족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에 가려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톺아보는 ‘사이드스케이프’ 연작으로 유명한 홍순명이 오랜만에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이라는 주제로 사이드스케이프의 주제의식을 심화, 확장하며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대규모 연작을 선보인다.

전시 주제 중 하나인 재난은 전지구적 환경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말한다. 작가는 가뭄이나 산불, 홍수 등 점점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자연의 상태를 ‘재해’로 규정한다며 인간중심적 시각임을 꼬집었다. “맑은날이 오래 지속되면 가뭄이고, 비가 오래내리면 홍수다. 인간이 수용할 수 있으면 정상이고, 아니면 비정상이다. 그러나 인간을 빼놓고 보면 이는 그저 자연현상이다”

홍순명, 풍경-아이러니 II, 캔버스에 유채, 152x232cm, 2022 [사진=사비나미술관 제공]

물론 최근의 재난은 인간탓이다. “지난 10년간 매일 밤 1시간씩 전세계 뉴스를 리서치했다. 공통적 뉴스는 재난문제다. 재난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재라는 가정을 하게 됐다” 2층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붉은 풍경은 지난 2020년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다. 맞은 편에는 태풍에 뒤집어진 바다가 펼쳐진다.

또 다른 재난인 녹아내린 빙하는 4층 전시장을 채웠다. 스펙타클한 상황이 펼쳐지는 2층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심각성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지구 온난화의 슬픈 풍경이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아크릴과 유채, 182x227cm, 2021 [사진=사비나미술관 제공]

전지구적 재난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3층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족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재난”이라며 웃음을 던진 작가는 “어머니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사셨고, 저도 작가로 제가 원하는대로 온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화해라는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은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고, 자신의 삶을 현대화로 비유해 유래없는 갈등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을 캔버스에 담았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라는 이름의 연작엔 수십년의 시간이 겹쳐있다. 작가는 어머니 앨범에서 발견한 어머니 혹은 가족의 이미지를 선택해 캔버스에 그린다. 그위 1932년부터 1985년 사이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한강대교 건설을 위한 착공 발파 장면, 6.25전쟁 등-의 실루엣에 따라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다. 테이프가 붙은 화면위에 작가의 사진이나 그가 겪었던 사건의 이미지를 그리고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내면 최종적 화면엔 어머니 세대의 사진과 한국 근대화의 기억과 이후 세대의 경험이 차례로 드러난다. 복잡한 레이어는 상처가 난 뒤 딱지가 앉은 모양처럼, 흉터자국처럼도 읽힌다.

“모두가 진지하게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다른 가치관에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연출해 봤다. 살풀이 하듯 진행한 작업과정에서 어머니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된 뜻밖의 수확도 있었지만 결국은 불편한 풍경화 혹은 자화상이 돼 버렸다. 여전히 ‘비켜가는 풍경, 사이드스케이프’다”

상처는 결국 낫는다. 그러나 흉터는 남아 그 일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화해는 요원하다. 최선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이 자연이든, 가족이든. 전시는 11월 20일까지.

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