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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대통령의 일머리(2)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축구 사령탑인 벤투 감독은 고집이 세다.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간다. 빌드업(수비에서부터 공격 작업을 만들어 가는 것)과 볼 점유율을 신봉한다. 브라질 초청경기에서 1대 5로 져도, 동아시안컵에서 숙적 일본에 0대 3 수모를 당하고도 좀처럼 자신의 전술을 바꾸지 않는다. 선수 선발도 개인 능력, 컨디션과 기록 등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신의 틀에 얼마나 잘 맞느냐를 보고 뽑는다. 요즘 물오른 득점력으로 K리그 흥행을 이끌고 있는 ‘앙팡테리블’ 이승우도 끝내 부르지 않았다. 순발력이 좋고 감각적 슈팅이 강점인 이승우는 빠른 연습에 최적화된 선수다. 빌드업이 먹히지 않을 때 플랜B의 카드로 활용하면 좋으련만 벤투는 요지부동이다. 2019년 1월 아시안컵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이승우가 벤투가 보는 앞에서 물병을 걷어찬 이후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도 고집이 세다. 한동훈(법무부 장관), 이복현(금융감독원장) 등 후배 검사들을 중용하고, 한덕수(국무총리). 김대기(대통령 비서실장) 등 관료 출신 ‘올드보이’들을 핵심 포스트에 기용하면서도 ‘보수 정당의 미래’로 칭송받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손은 잡지 않았다. 백전노장의 기획재정부 엘리트 관료들이 미국발 인플레 충격이 몰고 올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굳센 기백의 검사들이 전 정권의 부패를 일소하며, 정계의 ‘앙팡테리블’ 이준석이 ‘꼰대당’의 면모를 일신하며 청년과 중도층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는 3각 구도의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처럼 임기 초반에 국정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무는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대선 때 두 번의 가출로 속을 쓰리게 했던 이준석에게 남은 앙금을 털지 못한 협량의 정치가 ‘내부 총질’ 파동을 낳으며 오늘날 집권여당을 내홍의 수렁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월드컵이든, 정치세력이든 결국은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벤투의 빌드업 축구가 16강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협소한 인재 풀이 대사를 그르쳤다는 비판에 시달릴 것이다. 윤 대통령도 “전 정권 핑계는 더는 안 통한다”며 월드컵 4강신화의 주인공인 이영표 현 강원FC 감독의 명언을 빗대 “대통령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재기발랄한 이준석 없이 홀로 가겠다면 국정에서 성과를 내 이탈한 청년·중도층의 지지를 복원하는 수밖에 없다. 벤투가 이승우 대신 ‘플레이메이커’ 이강인을 다시 부르고 돌파력이 뛰어난 신예 양원준을 발탁한 것처럼 이준석을 대체할 참신한 디지털 세대를 발굴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정권 초기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분명히 했다. 지역균형발전(노무현), 선진일류국가(이명박),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시대(박근혜), 소득주도성장(문재인) 등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그런 게 모호하다. 취임사에서, 8·15 기념사에서 그리고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일관되게 자유의 가치를 역설했지만 지극히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다. 윤 정부의 철학과 목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국정비전과 브랜드를 제시하고 대통령실, 여당, 관료집단이 같은 방향을 보면서 뛸 때 국정의 득점력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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