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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한국 미술시장…MZ 컬렉터, 1조원을 부탁해
한국 미술시장의 동력으로 등장한 MZ세대
영어 구사력·막강한 정보력 바탕 컬렉션 문화 바꿔

미국 기준금리 인상·유가 급등에 증권·부동산 등 자산시장 하락세
한국미술시장, 아시아 아트허브로 샴페인 터졌지만 낙관 어려워

글로벌 브랜드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각 9월 4일과 5일 성료했다. 약 7만명 넘는 인원이 두 페어를 찾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20·30대다. MZ 컬렉터가 추동하는 한국 미술시장,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너머로 프리즈서울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이 보인다. [연합]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20~30대 젊은 세대가 미술계의 동력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리처드 암스트롱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관장의 말이다.

글로벌 양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성황리에 종료했다. 미술품거래액이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대를 돌파하고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서울에 지점을 내면서 서울이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아트허브’가 될 것이라는 샴페인이 터졌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 유가급등에 증권·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찬바람이 불고 있다. 20·30대가 동력으로 등장한 한국 미술시장은 그렇다면 모든 자산이 '녹아내리는' 이 시점에 삭풍을 피해갈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헤럴드경제가 MZ컬렉터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 미술시장을 살펴본다.

▶MZ 컬렉터는 누구인가

7만명이 넘는 인원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찾았다. 주최 측은 관람객의 절반 정도가 20·30대로 보고 있다. 이른바 MZ로 불리는 젊은 세대가 한국 미술시장을 추동하는 세력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MZ세대(1980~2005년생)는 평균 7.5점을 구매했다. 바로 윗세대인 X세대(1965~1979)와 베이비부머인 B세대(1946~1964)는 평균 10.5점을 사들였다.

구매횟수나 금액 면에서 MZ가 XB세대보다는 열세다. 그러나 지난 3년간 누적 구매금액이 1억원이 넘는 ‘상위 구매자’의 경우는 평균 20.8점을 구매했다. 상위 구매자의 누적 구매액은 1억~5억원 사이가 80.4%, 5억원 이상이 19.6%에 달했다. 연구보고서에서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2억원 이상 사들인 컬렉터가 가장 많았고, 10억원 이상, 50억원 이상이라고 답한 컬렉터도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상위 구매자가 시장 트렌드를 이끈다는 것을 고려하면, MZ의 잠재력은 XB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 [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

MZ 컬렉터는 여성이 남성보다 1.4배 많았다.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고 사무직과 전문직이 주를 이룬다. 소득은 연봉 6000만원 이상이 전체 60%가 넘는다.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 주로 구매하는 셈이다. 상위 구매자로 가면 남녀 비율이 역전된다. 남성 55.8%, 여성 44.2%로 남성이 조금 더 많고, 이들의 연봉은 6억원 이상이 35%에 달한다.

MZ 컬렉터는 한국 젊은 작가 구매를 시작으로 해외 작가로 확장한다. 상위 구매자는 한국과 해외 작가 비중이 1대 1 수준으로, 국내 작가는 젊은 작가보다 이미 시장에서 지위가 확정된 블루칩 작가 비중이 컸다. 해외 작가는 성장 가능성이 큰 젊은 작가를 선호했다.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 [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

이는 구매예산과도 관련이 있다. MZ 상위 구매자는 미술품 1점에 대한 최대 가용금액이 평균 1억~3억원이었다. 이 금액은 국내 블루칩 작가의 원화, 글로벌 블루칩 작가의 판화 또는 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10억원(밀리언달러 작가)이 넘는 작가를 대거 보유한 글로벌 메가 갤러리의 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이 큰 신진 작가 발굴역량이 뛰어난 중대형 갤러리들이 MZ 컬렉터의 주목을 받을 것”내다봤다.

보고서가 주목하는 MZ 컬렉터의 특징은 언어장벽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인데 상위 구매자의 경우 해외 갤러리 구매비율이 17%에 달한다. 또 미술품을 투자처로 인식한다. MZ 컬렉터 70%가 투자를 구매 시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XB세대는 30%만이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MZ세대는 구매시점부터 작품에 따라 보유기간을 정해놓고 구매하며, 상위 구매자 두 명 중 한 명은 재판매 경험이 있었다.

▶이들이 이끄는 시장의 미래는

MZ 컬렉터에 대한 관심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아트바젤도 해마다 1~2회 ‘더 아트마켓 리포트’를 통해 젊은 컬렉터 세대의 등장을 주의 깊게 관찰해왔다. 아트넷 수석에디터인 팀 슈나이더는 이 리포트를 인용해 아시안 MZ 컬렉터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선대부터 컬렉션을 대대로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본인 세대도 이어가는 경우와 창업으로 자수성가한 경우다. 후자의 경우 미술품 컬렉션은 자신의 성공과 부를 자랑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심지어 MZ 컬렉터들은 세계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아트넷과 모건스탠리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초현대미술(1974년 이후 출생 작가 작품)의 경매 판매액이 2019년(1억8340만달러)부터 2021년(7억4220만달러)까지 305% 성장했다. 특히 중국과 아시아 컬렉터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2020년 초현대미술 경매에서 아시아 비중은 47%로, 미국(30%)과 유럽(23%) 대비 압도적이다. 지난 2년간 홍콩 경매에서 아모아포 보아포, 하비에르 카예하, 에이버리 싱어 등 신기록을 경신한 작가의 작품은 모두 45세 이하의 아시아 컬렉터에게 돌아갔다.

‘프리즈 서울’에 출품된 아모아포 보아포의 초상화. [연합]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기 위해 리처드 내기 갤러리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연합]
마음에 드는 작품은 찍고, 올리고, 공유한다. ‘프리즈 서울’에 출품된 애쿼밸라 갤러리의 피카소의 작품. [연합]

한국 MZ 컬렉터도 크게 보면 이 대열에 합류해 있다. 재판매시점을 정해놓고 구매하는 등 작품을 본격적 투자 수단으로 보는 점, 장식성이 뛰어난 회화를 선호하는 등 특정 작가에 대한 쏠림 현상, SNS의 활성화로 형성된 커뮤니티 문화 등 한국적 특징이 더해진다.

미술작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대체자산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모님들의 우아한 취미생활’에서 벗어나 평생 고민해야 하는 투자라는 뜻이다. 주식과 부동산처럼 미술품 또한 도전해볼 만한 자산으로 편입된다면, 현재 MZ 컬렉터의 구매는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미술시장으로서는 든든한 구매자층을 확보한 셈이다.

투자자산이면서 동시에 집(아파트)에 걸어놓아야 하는 인테리어적 속성 때문에 장식성이 뛰어난 회화에 대한 수요도 크다. 이른바 단색화 작가로 불리는 국내 블루칩 작가에 대한 쏠림에는 이 같은 요인도 있다. 덕분에 단색화는 ‘안전자산’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안정적인 수익을 국내 블루칩 작가에게 기대한다면 리스크 테이킹은 해외 신진 작가에서 한다. 최근 경매에서 무섭게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로비 드위 안토노, 수안자야 켄컷, 사볼츠 보조, 로버트 나바, 캐서린 번하드 등은 2~3년 전부터 유망 신진 작가로 거론됐다.

한국 미술시장의 약점으로 늘 지적되는 것은 편향성이다. 이른바 ‘대박’났다는 프리즈서울에 나온 갤러리들이 모두 높은 판매액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부스비도 건사하지 못한 갤러리들도 많았다. 국내 컬렉터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이다. 마리아 발쇼 영국 테이트미술관 관장은 “폭이 넓어야 오래 간다”며 시장 규모의 확대보다 작가 다양성과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MZ세대가 이전 세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즐기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대를 대중문화 부흥기에 함께 보낸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 안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취향을 자랑하며 비슷한 취향을 지닌 이들로부터 축하받는 데 익숙하다. 시장투명성이 점점 좋아지는 것도 이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컬렉터의 마지막은 미술관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취향으로 모은 작품을 만인에게 공개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 궁극적 도달점이라는 뜻이다. MZ 컬렉터들은 이미 나만의 미술관을 짓고 있다. SNS에 올린 사진에 달린 수많은 ‘좋아요’가 사이버상의 관객들이다.

고환율, 고물가, 고이율. 한국 경제가 지금 맞닥뜨린 상황이다. 미술시장이라고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업계 전문가가 이제 정점을 찍고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긴 암흑기가 올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MZ 컬렉터들의 특징 때문이다. 이들이 구축한 커뮤니티문화가 한국 미술시장을 지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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