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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너의 탓이 아니야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학생들만큼이나 교수인 필자도 이번 학기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설렘이 크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오랜만에 전 과목 대면 수업이 진행되기에 그 기대는 훨씬 크다.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리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학교, 직장 등 어디에서나 대면보다 비대면이 더 익숙해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민의 위생 관념이 높아지고 불필요한 미팅이나 회식자리가 줄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점이 있으면 반대로 그렇지 못한 점도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대면 수업이나 비대면 미팅, 온라인 면접 등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직접 살을 맞대고 호흡하는 일이 줄었다. 자연스레 대인(對人), 즉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불편하다거나 더 나아가서는 공포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흔히 알고 있는 대인기피증은 정확히 ‘사회 불안장애(공포증)’라고 진단한다. 이는 불안장애의 하나다. 특정한 대인관계나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을 의식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불안을 경험한 이후 불안이 생기는 증상을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혹시 나도 사회 불안장애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불안이나 수행 불안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야기하는 ‘장애’는 그 정도가 심해서 남 앞에 나서는 상황을 계속 회피하게 되고, 이 같은 처지에 당면할 것으로 예상되면 심한 예기불안을 가지며, 일상생활에 적지 않게 지장을 받아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를 말한다.

필자는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1~2주 후에 학생 면담을 진행한다. 최근 그 어느 때부터 학교에 나오는 행위 자체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잠이 부족하거나 물리적 거리 문제가 아닌 강의실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친구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특히나 감염병으로 인해 대학 입학과 동시에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뤘던 20학번 학생들은 그새 3학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같은 강의실 안에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니 대면 수업으로 체제가 바뀐 것을 부담스러워하다가 심하게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학생들이 결국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필자에게 찾아온 한 학생도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이미 병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지만 필자와 단둘이 있는 방안에서조차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두 손은 갈피를 못 잡고 서로의 손가락을 잡아 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전의 학생 모습이 눈에 선해 나지막이 이야기를 전했다.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고, 그리고 “이건 너의 탓이 아니다”라고, 또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게 관심이 크지 않다”고, “그러니 당당하게 세상에 발을 내딛자”고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며 그 학생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어쩌면 사소한 이 말 한 마디가 울림을 줄 만큼 화면 밖 세상도 그리 두렵지 않다는 것을 소소한 일상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김은성 호남대 작업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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