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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행위예술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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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201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눈을 떴다. 이번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징 박힌 가죽 재킷, 까맣게 탄 피부, 옅은 기름 냄새를 보니 모터 사이클족 같았다. 마리나는 그를 봤다. 이 사내도 지지 않겠다는 양 마리나의 눈을 응시했다. 10분이 흘렀다. 이 사내는 갑자기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주변이 술렁였다. 사내는 솥뚜껑만 한두 손으로 눈을 감쌌다. 울음을 꺽꺽 삼켰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행위 예술가인 마리나는 MOMA에서 3개월간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는 전시를 했다.

별게 없었다. 마리나가 미술관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2층의 한 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게 다였다. 방문객은 마리나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눈맞춤뿐이었다. 시간은 자유였다. 다만 대화도, 스킨십도 금지였다. MOMA는 "바쁜 뉴요커가 한가하게 앉아있을 리 없다"며 떨떠름해했다.

예측은 빗나갔다. MOMA가 붐비기 시작했다. 마리나와 마주 앉으려고 세계 각지 사람들이 찾아왔다. 많은 이가 꼭두새벽부터 입구에서 진을 쳤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가만히 앉아있는 마리나는 돌부처 같았다.

그런 마리나와 눈을 마주치는 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웃었다.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괴성을 질렀다. 누군가는 눈싸움을 했다. 누군가는 토를 했고, 누군가는 갑자기 옷을 벗어 던져 경비가 달려왔다. 5분도 못 채운 채 뛰쳐나가는 이가 있었다. 지박령(地縛靈)이 된 이도 있었다.

마리나는 늘 그대로였다.

자식 14명을 모두 잃은 뒤 그대로 굳어버린 그리스·로마 신화 속 니오베(Niobe)가 된 듯했다. 마리나는 736시간 30분간 앉아 있었다. 1주일에 나흘간 단식했다. 앉아있는 7~8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마리나가 어떻게 생리 작용을 해결하는 지가 진지한 토론 주제기도 했다. 전시 기간 누적 관객은 850만명이었다. MOMA 역사상 최다 관람객 수였다. 당시 뉴욕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하나, 둘, 셋….

마리나는 또 눈을 떴다. 빨간색 롱 드레스를 입은 마리나가 이번에는 자기 앞에 앉은 중년 사내를 쳐다봤다.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백발 신사였다. 마리나는 그를 보자 동요했다. 살짝 웃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마리나는 통증을 느꼈다. 이번 전시 중 없던 일이었다. 사내는 미소를 보였다. 마리나를 다독이는 듯했다. 그의 눈시울도 뜨거워진 상태였다. 사내는 목울대가 뜨거운 듯 심호흡을 했다. 사람들은 둘을 숨죽이며 쳐다봤다. 마리나는 곧 울 것 같았다. 철의 여인 같던 마리나가 딱 한 번, 무너진 때였다. 이 남성의 이름은 울라이(우웨 레이지에펜)였다.

22년 전 : 중국 만리장성
마리나·울라이, 더 러버스(The Lovers)

1988년 중국 만리장성.

마리나와 울라이는 이곳의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둘 다 탈진 상태였다. 머리는 산발이고, 손과 발은 거친 흙먼지에 부르텄다. 바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비루한 행색의 두 사람은 포옹했다. 서로의 손을 꽉 쥐었다. 나란히 서서 울먹였다. 마리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훌쩍였다. 울라이는 그런 마리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만감이 교차했다. 마리나는 그 순간을 "내 주변 모든 게 부서지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둘은 연인 관계를 끝냈다.

마리나·울라이, 더 러버스(The Lovers)

둘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각자 걸으며 헤어짐에 다가섰다.

3개월 전 마리나는 황해, 울라이는 고비 사막에서 첫발을 뗐다. 마리나는 빨간 옷, 울라이는 파란 옷을 입었다. 서로 2500㎞ 거리에 발자국을 찍어왔다. 12년 치 사랑의 마침표를 찍는 길이었다. 예술가인 둘은 결별마저 예술로 승화했다. 작품 이름은 '더 러버스(The Lovers)'였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품었다. 만리장성은 산 능선을 살려 만든 성벽이다. 아찔한 높이, 깎아내리는 듯한 계단 등 정글만큼 험한 길도 적지 않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몇 번씩 넘어지고 주저앉았다. 내일과 다음 생 중 무엇이 먼저 올지 알 수 없는 밤도 종종 마주했다. 하지만 그 통증을 견뎌냈다. 죽을 수도 있는 행위 예술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발을 뻗었다.

마리나·울라이, 더 러버스(The Lovers)

둘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각자 걸으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원래 이 행위 예술은 마리나와 울라이가 결혼을 위해 기획한 일이었다. 상대를 향한 발걸음은 애초 사랑의 결실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빨리 걸어가면 결혼을 앞당길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둘은 2500㎞의 험한 길을 웃으며, 설렘을 끌어안고 내달리듯 걸으려고 했다. 사랑은 모든 오르막길을 무릅쓰더라도 행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사랑의 행위만이 이에 따라오는 고통을 겪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였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그 걸음은 외려 이별을 재촉하게 됐다. 빨리 걸어갈수록 결별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이들의 발걸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졌다. 때론 걷다가 멈추어 섰다. 그 자리에서 얼굴을 감싼 채 하염없이 흐느꼈다.

마리나, 울라이

둘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각자 걸으며 같은 말을 떠올렸다.

'우린 어디서부터 엇갈렸을까.' 한때 마리나와 울라이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믿었다. 마리나의 기행(奇行)도, 울라이의 자유분방함도 서로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5년간 미니밴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빈 일을 회상했다. 둘은 매 순간을 단편 영화처럼 차곡차곡 기억했다. 마리나는 울라이의 손길을 곱씹었다. 울라이는 마리나가 활짝 웃으며 건넨 "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라는 말을 거듭 되짚었다. 성벽 길을 하염없이 걷던 둘은 종종 하늘을 봤다. 내가 보는 하늘을 저 멀리 상대방도 보고 있을 것이다. 밴에 올라타 바라보던 그 하늘을 떠올렸다. 눈물이 또 쏟아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땐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에 온 힘을 쏟았다.

마리나, 울라이

중국이 허가를 빨리 내줬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8년 전, 중국은 두 사람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더 러버스'에 대해 심드렁해했다. 왜 하필 만리장성이냐는 거였다. 중국이 이를 심사하며 8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둘도 8년씩 더 늙었다. 울라이는 그 사이 중국어 통역을 한 여인과 외도했다. 마리나도 같은 기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줬다. 그런 시간의 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중국 탓은 아니었다. 둘은 이미 금 간 유리였다. 아무리 맞붙여도 갈라진 틈은 벌어질 터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둘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이들은 유명해질수록 가치관을 놓고 충돌했다. 가난에 지친 마리나는 돈과 명예를 추구했다. 부르주아 삶을 경멸한 울라이는 그런 마리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리나·울라이, 더 러버스(The Lovers)

하지만 사랑은 사랑, 이별은 이별, 예술은 예술이었다.

이들에게 사랑과 이별, 예술혼은 별개였다. 중국의 허가 소식을 들은 마리나와 울라이는 '더 러버스'를 강행키로 했다. 둘은 이 일을 사랑의 오프닝이 아닌, 사랑의 엔딩으로 꾸미기로 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2500㎞를 걸으며 규칙을 지켰다.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걸었다. 그렇게 서로 만났다. 둘은 잠깐 울었다. 그리고 이별했다. 마리나는 이에 "우리에겐 특정한 형태의 결말이 필요했다. 이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극적이고, 사실 영화 엔딩에 가까웠다"고 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34년 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97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마리나, 울라이

마리나는 이곳에서 울라이와 마주했다. 둘은 약속한 듯 사랑에 빠졌다. 마리나는 이해받기 힘든 길을 걸어왔다. 밥 먹듯 나체의 몸을 보였다. 매 공연에서 피와 눈물을 쥐어짰다. 울라이는 서독 출신의 행위 예술가였다. 관습에서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을 향유했다. 마리나는 이 사내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울라이는 마리나의 도발적인 면에 매력을 느꼈다.

사실 마리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이가 아니었다. 마리나에게는 집시 같은 면이 있었다. 한 곳에 천막을 치고 살며 영원히 머무를 듯 정성을 쏟다가 어느 순간 망설임 없이 떠났다. 마리나가 자신의 그런 성향을 부정해도, 실제 삶은 늘 그런 식이었다. 울라이에게 마리나는 자신과 같은 별종이자 연구대상이었다.

두 사람이 1974년에 만났다는 말도 있다.

마리나는 그 해 행위 예술 '요한의 별'에 매달렸다. 자기 민족·국가가 행한 일을 고발하기 위한 작업인데, 자신의 배에 면도칼을 대 사회주의 상징인 별을 그리는 일을 했다. 당연히 출혈이 극심했다. 울라이는 피를 뚝뚝 흘리는 마리나를 보고 감동했다. 그런 울라이가 마리나의 배를 치료해주면서 연인이 됐다는 것이다.

마리나, 울라이

사랑이 내려앉는 순간, 모든 우연은 운명의 탈을 쓴다.

마리나와 울라이 둘 다 생일이 11월 30일이었다. 서로가 그날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점이 비슷했다. 매해 생일이 있는 달력 페이지를 찢는 습관도 똑같았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머리를 길게 길렀는데, 펜이나 젓가락으로 이를 고정하는 습관조차 동일했다. 마리나에게 울라이는 신이 준 선물 같았다. 울라이만 있다면 지독했던 삶도 살아갈 수 있을 듯했다. 둘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옷을 입었다. 말투와 걸음걸이도 같아졌다. 연인이자 친구, 동료의 관계는 영원할 듯했다.

실제로 마리나와 울라이는 12년간 작품 14편을 함께 했다.

마리나·울라이, 정지된 에너지

대표작은 1980년 '정지된 에너지'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이 행위 예술에는 마리나와 울라이가 함께 등장한다. 마리나는 활을 쥔다. 울라이는 그 활에 걸린 화살이 마리나의 심장을 향하도록 활시위를 당긴다. 서로 당기는 힘 탓에 둘의 몸은 뒤로 기울었다. 울라이는 힘만 살짝 빼면 마리나를 죽일 수 있었다. 서로는 온 정신을 집중해 서로를 살렸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타자에 대한 신뢰를 증명했다.

마리나·울라이, Death Self

앞서 1977년에는 'Death Self'를 선보였다.

마리나와 울라이가 둘의 입을 붙인 채 서로의 숨으로 호흡하는 행위 예술이었다. 두 사람은 17분 뒤 이산화탄소 질식으로 기절했다. 같은 해 '측정할 수 없는 것'도 공개했다. 벌거벗은 마리나와 울라이가 좁은 출입구에 섰다. 사람들이 지나가려면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두 사람 중 누구 몸과 더 많이 닿을지는 자유였다. 이 행위 예술은 6시간 동안 이어질 계획이었지만, 경찰이 다급하게 뛰어들어 3시간 만에 끝났다.

마리나·울라이, 시간에서의 관계
마리나·울라이, AAA-AAA

이 밖에 마리나와 울라이는 둘밖에 할 수 없는 작품들을 고안했다.

16시간 동안 서로의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채 등을 맞대고 있는 '시간에서의 관계'(1977), 마주 서서 입을 벌린 채 긴 소리를 내며 다가가는 'AAA-AAA'(1978) 등이다. 그 사이 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커플이 됐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서로를 택한 데 대해 후회가 없었다.

평생 똑같은 별, 똑같은 구름을 보며 살아야 할 사이였다. 똑같은 책을 읽으면 분명 똑같은 감동을 할 사이였다. 가끔 누추하고 아팠고, 때때로 소리치며 싸웠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1980년, 만리장성을 놓고 '더 러버스'를 기획했다. 서로가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른 채. 핑크빛을 꿈꾼 '더 러버스'의 색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 채 손을 맞잡았다.

64년 전 : 유고슬라비아

'정말로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이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그런 이는 종종 룰을 과감하게 어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짐마저 깨부수는 일을 겪었다'는 식의 드라마 한 편을 읊으면서. 사실 마리나는 자신이 누군가를 영혼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마리나가 머문 곳은 대부분 폐허였다.

마리나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 마리나

1946년 유고슬라비아.

그 해 마리나는 태어났다.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막이 올랐다. 집안은 심상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세르비아의 그리스도 정교회 대주교였다. 부모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partisan)이었다고 한다. 마리나가 어린 시절 배운 교육 대부분은 종교와 공산주의에 대한 희생이었다. 마리나의 아버지는 가정불화로 1964년에 집을 나갔다. 샴페인 잔 12개를 깨뜨리고 난 뒤였다. 마리나의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더욱 통제했다. 마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끔찍한 결혼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나와 내 동생을 군대식으로 통제했다"고 회고했다. 마리나를 놓고 어머니는 "왜 잘난 척이냐"며 종종 구타했다. 마리나는 29세까지 어머니와 살았는데, 통금 시간은 늘 오후 10시였다.

하지만 역사 속 대부분 혁명이 그랬듯, 통제와 억압은 아이러니하게 강렬한 자유를 낳는다.

마리나는 그림의 매력에 푹 젖었다. 붓과 색연필을 들면 통증이 옅어지는 듯했다. 그곳에선 늘 자유였다. 사회주의 혁명용 트럭을 본뜬 장난감 두 개가 충돌하는 그림도 서슴지 않게 그렸다. 마리나는 캔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마리나는 무작정 군 기지로 찾아가 "연기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겠다"며 비행기에 타겠다고 요청했다. 군은 마리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고 무시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리나는 굴하지 않았다.

마리나의 비정상적인 인내력 또한 통제와 억압의 결과물이었다. 마리나는 자기 몸을 캔버스처럼 다루기로 했다. 내 몸이야말로 자유의 극치였다. 마리나는 1973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첫 행위 예술 '리듬 10'을 선보였다. 준비물은 칼 20개와 녹음기 2개였다. 마리나는 펼친 손의 손가락 사이로 리듬감 있게 칼날을 찔렀다. 러시안룰렛 같았다.

마리나는 칼에 베일 때마다 통증을 참고 새 칼을 꺼냈다.

마리나는 스무 번 베였다. 이 작업 소리는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마리나가 녹음기를 되감아 처음부터 재생했다. 섬뜩한 칼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리나는 그 소리에 맞춰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실수가 이어졌다. 자유를 움켜쥐었지만,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안절부절못하는 자화상을 표현한 듯했다.

화제를 몰고 온 행위 예술 '리듬 0'은 1년 뒤에 이뤄졌다.

테이블 위 72가지 물체를 원하는 대로 저에게 쓰세요.
퍼포먼스.

나는 객체입니다.

프로젝트 중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소요 시간 : 6시간 (오후 8시~오전 2시)

마리나는 관객에게 이 안내문을 띄운 채 가만히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꽃, 꿀, 빵, 향수, 와인, 깃털, 포도알 등 소위 쾌락의 도구, 칼, 채찍, 가위, 면도날, 금속 막대기, 권총과 총알 등 이른바 파괴의 도구가 올라왔다. 시작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잠잠했다. 이대로 끝날 듯했다. 한 사람이 마리나에게 꽃을 줬다.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마리나는 가만히 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이 행동이 도화선이었다.

여태 눈치 보던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칼로 옷을 찢었다. 드러난 살에 상처를 냈다. 일부는 거기서 흘러나온 피에 혀를 댔다. 총이 머리에 겨눠졌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놓이려고 할 때 사람들은 서로 다투기도 했다. 마리나는 통증을 견뎠다. 몇몇 사람들이 마리나를 들어 올려 테이블에 눕혔다. 고작 3시간이 흐른 즈음 마리나는 벌거벗겨졌다. 4시간쯤 지났을 땐 마리나의 목과 배 등에 상처와 낙서가 가득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약속한 시각이 지났다.

마리나가 일어섰다. 관객을 향해 걸었다. 이들은 마리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모두 도망쳤다. 마리나는 '리듬 0'을 통해 도덕과 규범, 즉 어느 정도 '군대식 통제'를 받는 인간에게 감춰진 욕망과 잔혹성을 폭로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신은 제 아버지와 닮았어요. 제 아버지 역시 저를 침울하고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저를 어른스럽게 만들지 못한 채, 조숙하고 반항적인 성격으로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저를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정말 쉽게 다룰 수 있었을 거예요. 저는 순했거든요.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았어요." 마리나의 이 행위 예술은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마리나는 그 누구도 자기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괜찮았다. 부모님에게서 엿본 결혼 생활은 끔찍할 뿐이었다. 아이를 갖는 일조차 과분했다. 불굴의 의지로 삶을 헤쳐왔다. 몸의 통증처럼 마음의 통증도 늘 그렇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상관없었다. 지금 이대로면 충분했다. 울라이. 울라이의 그 천진난만한 파란 눈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64년 후 : 미국 뉴욕

하나, 둘, 셋….

마리나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재차 헤아렸다. 다시 봐도 이 남성은 울라이였다. 22년의 긴 세월을 품은 울라이였다. 푹 팬 주름살이 보였다. 구겨진 귓불이 보였다. 왜소해진 어깨가 보였다.

마리나, 울라이

마리나는 '더 러버스'를 마친 이후 삶을 떠올렸다.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했다. 명품 부티크에서 비싼 옷과 신발을 왕창 샀다. 참고 억눌렀던 일을 닥치는 대로 저질렀다. 그런데도 허전했다. 잃어버린 사랑도 사랑이었다. 통증은 좀처럼 옅어지지 않았다. 결국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발칸 바로크

마리나는 예술에 더욱 매달렸다.

마리나는 1990년대 발칸 반도에서 발생한 이른바 '인종 청소' 사건을 참고해 나흘간 1500개의 피 묻은 소뼈를 닦았는데, 이 행위 예술 '발칸 바로크'로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전쟁의 참상을 신랄하게 알린다는 평이었다. 마리나는 피투성이의 암호랑이 같았다. 아프고 지친 상태였지만, 본능이 이끄는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2년을 더 살아왔다.

울라이의 삶도 달라졌다. 울라이는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다. 정신 차려보니 파멸의 구렁텅이 입구까지 와 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마리나는 울라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리나는 이번 통증만은 참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맞을 때도, 칼로 손가락을 찌를 때도, 면도날로 배를 가를 때도, 총구가 목을 찍어누를 때도, 2500㎞의 길을 걸을 때도 통증을 참았지만 이번만은 견딜 수 없었다. 메두사를 본 듯 굳어있던 마리나는 그렇게 '규칙'을 깼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였다. 한겨울에 꽃비가 내릴 일이었다.

울라이는 마리나가 내민 손을 보고 옅게 웃었다. 울라이는 몸을 숙여 마리나의 손을 꼭 쥐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구도 마리나가 규칙을 깬 데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둘은 그 직후 다시 헤어졌다. 마리나는 울라이의 뒷모습을 보며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마리나는 그 일을 돌아보며 "울라이와의 만남은 작품이 아니라 내 인생 그 자체였다.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마리나, 울라이

마리나와 울라이는 그 후 종종 마주했다.

둘은 마음 맞는 친구로 소통했다. 두 사람은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지만, 함께 보낸 시간 중 대부분은 웃으며 보냈다. 2020년, 울라이는 림프계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76세 나이에 눈을 감았다. 마리나는 "그의 죽음을 알고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면서 한 인간이었고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그의 예술과 유산이 영원히 살아있으리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고 추모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리나는 만 75세의 나이로 지금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리나에게는 '행위(공연) 예술의 대모'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적 존재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악마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마리나는 자신을 전사로 칭하고 있다.

마리나는 8년 전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예술가는 전사가 돼야 한다. 전사의 역할은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는 건데, 이는 스튜디오 아트로 충분하지 않다. (…) 빵을 굽는 사람이라면 늘 마음을 모아 자기가 만든 빵이 세상에서 파장을 만들고, 역할을 하며 퍼져가는 데 염두에 두고 깨어있는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그게 전사의 모습이다."

〈후암동 미술관 읽는 순서(연재 중)〉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3)‘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4)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5)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6)“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7)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8)“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9)‘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0)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1)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2)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빈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3)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4)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15)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16)“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17)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대모

18)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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