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인재가 강조될 때마다 예전 교과서에서 배운 ‘십만양병설’이 떠오른다. 조선 후기 율곡 이이가 왕에게 전란을 대비해 십만명의 병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는 그 이야기다. 하지만 이 충언은 실행되지 못했고, 10여년 후 나라는 임진왜란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양민(養民)조차 어려웠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점부터라도 조금씩 채비했다면 어땠을까. 이 교훈은 현재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 더 많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감염병 위기와 보호무역주의 확산, 국제관계 경색에 따른 공급부족 같은 요인은 과거의 승리 공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즉 국가든, 기업이든 모두 새로운 무대에서 시험받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 기업들 역시 주연이 되기 위해 전력투구 중인데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재라고 입 모아 강조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하기 위한 연구·개발, 생산 공정, 품질관리에서 모두 우수한 역량을 가진 인재가 너무나도 절실하다. 특히 반도체, 미래차 등을 필두로 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인재에 대한 목마름은 전 세계적으로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국가 AI 실행과제’로, 중국은 ‘중국제조 2015’으로 미래 인재 양성계획을 세웠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는 향후 10년간 3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미래차 분야도 2028년까지 6년간 4만명의 기술인력이 부족하고 배터리 분야 역시 2020년 말 기준으로 학사 이상 인력이 2,823명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모두 현재 가장 주목받는 첨단 산업 분야라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코앞에 닥친 이 문제를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 해결방안은 크게 새로운 인력을 길러내는 방법과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대학교육이 핵심이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학과 전공과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면 우수 인력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워낙 빠른 기술 발전 속도를 학교가 따라가는 데에 한계가 있는 만큼 최근 경총이 고용노동부와 함께하는 ‘청년도약 프로젝트’와 같이 니즈가 있는 기업들이 직접 필요한 기술을 훈련하는 경우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력 활용도 필수다. 개별 기업이 사업을 재편했을 때 보유 인력을 재교육해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사업주 주도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 전체 산업 측면에서는 사양산업 인력을 재교육해 신산업 분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고용 서비스를 연계한 체계적인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시장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해외 고급 인력을 국내로 보다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외국인력 정책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1천명, 1만명을 먹여살릴 한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훈련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획일적인 학령기 교육을 개인별로 특화하는 교육의 질적 강화가 필수다. 어려운 길이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학 경쟁력도 높여 나가야 한다. 또한 길어진 생애에 맞게 평생학습이 일상화되도록 현재의 평생학습 시스템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할 것이다.
요즘 상황은 ‘십만양병설’이 논의된 조선 후기처럼 여러 어려움이 겹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선이 십만 병사를 양성하지 않아 겪은 결과를 아는 지금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얼마 전 정부가 향후 10년간 반도체인력 15만명 양성계획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때일수록 인재 양성 그 자체가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길임을 명심해 늘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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