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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 로망’ 올리비아 뉴턴 존, 하늘의 별이 되다
1970년대 최고 팝스타·배우 별세
‘이프 낫 포유’ ‘렛 미 비 데어’…
‘피지컬’ 빅히트…그래미상 4회
78년 영화 ‘그리스’로 만인의 연인
30년간 유방암 투병 희망의 상징
미국 캘리포니아주 헐리우드에 있는 ‘명예의 거리’에 8일(현지시간) 올리비아 뉴턴 존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 보도 블록에 누군가 꽃다발과 사진을 올려뒀다.[AFP]

금발 머리·청순한 외모·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1970년대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이 8일(현지시간) 73세를 일기로 영원한 별이 되어 떠났다.

그녀의 남편인 존 이스털링은 이날 뉴턴 존의 페이스북에 “올리비아가 오늘 아침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목장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잠들었다”고 영면 소식을 알렸다. 그는 “올리비아는 지난 30년간 유방암과 여정을 함께하며 승리와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애도했다.

영국 태생으로 호주 가수인 뉴턴 존은 1978년 청춘 영화의 대명사 ‘그리스’에서 ‘샌디’ 역을 맡으며 남자 주연배우 존 트라볼타와 함께 일약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리스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꿈, 열정을 다룬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출연 당시 뉴턴 존의 나이는 30세, 트라볼타는 24세였다. 금발에 청순한 외모를 지닌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만인의 연인’으로 불렸다.

팝가수로서도 크게 성공하며 1970·80년대를 풍미했다. 그의 앨범 판매량은 누적 1억 장이 넘는다. 23살인 1971년에 밥 딜런 노래 ‘이프 낫 포유(If Not for You)’로 첫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렛 미 비 데어(Let Me Be There)’, ‘피지컬(Physical)’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크게 사랑받았다.

2003년 4월 도쿄 공연 당시 뉴턴 존의 모습. [로이터]

1974년 발표한 ‘아아 어니스틀리 러브 유(I Honestly Love You)’를 시작으로 4차례 그래미상을 받았다.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한 1981년 발표작 ‘피지컬’은 빌보드 차트 10주 연속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피지컬’이 세운 10주 연속 빌보드 1위 기록은 11년 뒤인 1992년 보이즈 투멘의 ‘엔드 오브 더 로드’가 나오기까지 깨지지 않았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1954년에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 갔다. 10대인 1966년 영국에서 첫 싱글을 내며 데뷔했다. 인기는 1970년대 미국에서 컨트리 가수로 활동하면서 얻었다. 인기가 절정이던 1984년에 무용수 출신인 매트 라탄지와 결혼하고 딸 1명을 뒀지만 1995년 이혼했다. 뉴턴 존은 이후 2008년 환경운동가인 현 남편 이스털링과 재혼했다.

그는 1992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암 투병 생활을 해 왔으며 지난 2018년 가을에는 세 번째 척추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뉴턴 존은 2008년에는 기금을 조성해 어린 시절 성장한 호주 멜버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올리비아 뉴턴 존 암 센터(ONJ Cancer Centre)’를 설립하고 암 연구와 환자 지원을 해왔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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