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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도 27년만에 ‘빅스텝’…“지금 안올리면 상황 더 악화”
스태그플레이션 시대 진입 선언…물가 급등세 잡기 올인
브렉시트·우크라戰 경제 쇼크
경기침체 내년 4분기까지 지속
기준금리 1.25%서 1.75%로
만기도래분 포함 자산 127조원 ↓
양적긴축 구체적 계획도 발표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BOE)의 앤드루 베일리 총재가 4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영란은행은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1.25%에서 1.75%로 0.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7년 만에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현재 금리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다. [AFP]

세계 3대 중앙은행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영란은행(BOE)이 영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시대에 돌입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향후 장기간에 걸친 경기 불황을 피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예측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영란은행은 27년 만에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기준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것이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더 크고 장기간 이어질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선 두 자릿수 물가 급등세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英 기준금리,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양적긴축 돌입=영란은행은 4일(현지시간)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1.25%에서 1.75%로 0.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영란은행이 기준 금리 ‘빅 스텝’을 밟은 것은 1995년 2월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지난달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이달 MP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이날 인상으로 영국의 기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BOE 정책위원 9명 중 8명이 0.5%포인트 인상에 동의했고, 1명이 0.25%포인트 인상이란 소수의견을 냈다.

영란은행은 지난해 12월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중 가장 먼저 움직인 이후 이번까지 6차례 연속 금리를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사상 최저 수준인 0.1%로 떨어진 금리를 처음엔 0.15%포인트 올렸고, 이어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영국 경제가 금리 인상을 버텨낼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성장 동력을 훼손할까 봐 완만한 속도로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 영란은행이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도 적극 행동에 나서자 금리 인상에 속도를 올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란은행은 이날 주요국 중 처음으로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QT)에 나서겠다며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10여년간 이어진 양적완화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BOE는 다음 달 회의에서 승인이 나면 자산 매각을 시작할 계획이며, 현재 보유자산 8440억파운드(약 1339조원) 중 400억파운드(약 63조원) 어치를 1년간 처분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만기 도래분을 합하면 800억파운드(약 127조원)가 줄어들게 된다.

▶英 5분기 연속 경기 침체 예상...올 4분기 인플레 13% 선 돌파 전망도=이날 영란은행의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영란은행은 올해 4분기부터 영국 경제가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 침체는 2023년 4분기까지도 계속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내놓았다. 5분기 연속 경기 침체는 금융위기 때나 1990년대 초와 비슷한 기간이다.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2023년 -1.5%, 2024년 -0.25%다.

영국 BBC 방송은 “영국의 경기 전망은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암울하다”며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가계 역시 미국과 유럽에 비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發) 에너지 쇼크에 더 많이 노출되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기간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영란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장 물가 상승세가 영국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란은행은 올해 4분기 물가상승률 정점을 기존 11%에서 13.3%로 올려잡았다. 이는 1980년 이후 최고치다. 내년에도 중반까지 물가상승률이 10% 이상에 머물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당초 목표치인 2%를 크게 이탈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가스 등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영란은행은 가구 평균 에너지 요금이 현재 연 1971파운드(약 313만원)에서 연 3500파운드(약 556만원)로 약 7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되는 공급망 문제와 수요 증가, 브렉시트 이후 노동력 부족 등이 물가를 끌어올렸다고 영란은행은 진단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BBC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경제적 비용을 낳고 있다”며 “가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지금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란은행은 2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미국과 11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올리며 ‘빅 스텝’을 밟은 유럽 등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파운드화 가치가 더 떨어지고 이로 인해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영란은행으로선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하면서도 돈줄을 조이지 않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셈이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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