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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정체성을 말한다”…국공립문화예술기관·단체 CI
국공립문화예술기관ㆍ단체 CI의 변화
 
2022년 새 CI…공공기관의 실험과 진화
국립심포니, 친근함ㆍ지속가능성 담아
세종문화회관, 천지인ㆍ오선지ㆍ건축물
 
전통의 CI…브랜드 확산 강화
예술의전당, 국영문 결합으로 세계 지향
국립극장, 극장의 통일성ㆍ전통 강조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극장이 내달 29일 열 예정이던 '국립극장·국립극단 70주년 기념식'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취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국립극장 전경. 연합뉴스
국립극장 전경.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 달 공연 건수 최대 4000여회. 엔데믹을 마주한 현재 공연계에선 하루 최대 260여건의 공연이 막을 올린다. 이 많은 공연을 찾는 관객들에게 공연장의 상징성이나 이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공연장의 로고 역시 마찬가지다. 공연이 아닌 로고를 만나려 ‘특정 장소’를 찾는 관객은 없다. 그럼에도 국공립문화예술기관과 단체에 있어 CI(Corporation Identity)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나아갈 방향성과 의지를 담는 그릇이다.

원승락 세종문화회관 디자이너는 “로고는 출발선에서 쏘는 총 같은 것”이라며 “‘땅’ 쏜 뒤, 우리가 어떤 트랙에 서서 출발한다고, 우리가 시작하는 일이 꽤 흥미로울 것이라고 알리는 일종의 신호”라고 말했다.

국공립문화예술기관과 단체가 CI를 만드는 과정은 ‘고행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상충한다. 문화예술을 전달하는 공연장이라는 특성과 공공기관의 속성이다. ‘보편타당한 결과물’을 반드시 내야 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은 “세련미, 트렌드보다는 실패를 피하기 위해 과거 결과물의 답습”(원승락 세종문화회관 디자이너)을 반복하게 한다. 실험이나 모험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영해야 할 목소리도 많다. 한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다양한 구성원이 모인 공간인 만큼 다양한 의견과 니즈가 있다”며 “100명의 사람에게선 100개의 시선과 취향이 나온다”고 했다. 모두의 의견 취합이 어려우니 한 기관을 대표하는 CI임에도 구성원의 마음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관장의 임기는 정해져 있고, 조직원의 자리는 변동이 많아 CI를 만들어도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난관이다.

예술의전당 내부.[예술의전당 제공]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예산이다. 국공립문화예술기관 관계자들은 “어쩌면 막대한 예산이 확보된다면 보다 좋은 퀄리티와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세련된 CI를 만들 수도 있다”며 “국공립예술기관, 예술단체가 CI를 만들며 어떻게 더현대나 리움미술관을 이길 수 있겠냐”고 토로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 이미지를 선보이는 곳이다.

관계자들은 “적은 예산으로 정체성과 역사를 담으면서도, 구성원은 물론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적 만족도’를 끌어내는 CI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고 말한다. 천편일률적이고 특색없는 디자인으로 인해 매서운 비판과 야속한 조롱도 따라다닌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것이 ‘역량 부족’의 문제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올해에도 주요 국공립문화예술단체와 기관의 새로운 CI가 등장했다. 과거의 CI가 기관의 이름과 브랜드를 알리는데 우선 순위를 두고 출발했다면, 요즘의 CI는 제법 실험과 도전을 감행해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정체성과 방향성을 뚝심있게 새기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온 CI와 ‘신상’ CI의 공통점이다. 원승락 디자이너는 “기업의 정신을 구현하려 아이덴티티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정신이 담겼다고 설득하는 과정을 갖기도 한다”며 “중요한 것은 각자 어떤 정신을 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태어난 CI는 무한 확장해, 극장과 예술단체의 굿즈로도 선보이며 관객을 맞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새로운 CI로 제작한 굿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새 CI…친근함·지속가능성 강조

▶ 키 컬러(Key Color) : 녹색.

▶ 의미 :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OREAN NATIONAL SYMPHONY ORCHESTRA)의 영문 약자인 KNSO를 직선과 곡선으로 표현했다. K는 무대와 객석, N은 단원, S는 관객, O는 삶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가장 앞에 놓인 음표 형상은 ‘국립심포니의 좋은 음악, 좋은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환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새겼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브랜드와 CI의 리뉴얼은 새 명칭으로 태어난 악단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담았다. ‘국립’의 무게가 가져다주는 근엄함보다 국민 옆에 다가서는 음악이라는 ‘친근함’을 강조하고자 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올초 ‘국립’ 명칭을 달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브랜드와 CI의 리뉴얼은 새 명칭으로 태어난 악단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담았다. ‘국립’의 무게가 가져다주는 근엄함보다 국민 옆에 다가서는 음악이라는 ‘친근함’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첫 번째 방향성이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음악적 유산은 탄탄히 세우되 국민의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친근함 안에서 다양한 변주와 확장 가능성,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새로운 CI로 제작한 굿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키 컬러’인 짙은 녹색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립심포니를 이끄는 중요한 가치인 “미래로 나아가는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색상이다. 관계자는 “모두 변하지 않는 호시절을 상징하는 색으로 ‘죽림의 푸름’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영문과 도형의 심볼이 조합된 CI의 경쾌함을 이 색상이 눌러주는 역할도 한다. 녹색과 함께 주색(핑크), 혁색(브라운)도 사용된다. 각각 ‘적송의 붉음’과 ‘토양의 짙음’을 상징한다는 것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설명이다.

전신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시절 태극 문양의 청색과 적색이 심볼이 됐던 것과 비교하면 도리어 명칭의 무게감은 덜어난 가벼운 접근이 인상적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측은 “다양한 변주 안에서 포용성 있게 관객을 만나기 위한 디자인으로 이 CI가 풍부한 변형가능성을 품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새로운 CI는 다양한 굿즈로 확장됐다. 가방, 엽서, 파우치 등을 만들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를 활용한 각종 굿즈 [세종문화회관 제공]

■ 세종문화회관, 천지인·오선지 결합…세종의 유산과 미래 담아

▶ 키컬러 : 하늘색, 검은색. 서브컬러는 노란색, 갈색.

▶ 의미 : 심볼마크는 세종문화회관 첫 음절 ‘세’의 초성 ‘ㅅ’이자 세종문화회관 파사드의 특징인 1개의 보와 6개의 기둥을 형상화했다. 6개의 기둥은 장막이 걷힌 무대를 암시하는 프레임으로 확장된다. 국문로고는 훈민정음의 제작 원리인 천지인을 통해 한국적 특징을 살렸고, 공연예술을 상징하는 오선지, 세종문화회관의 특징을 보여주는 파사드를 담아 문화예술기관으로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주요 색상들은 천(하늘색), 지(갈색), 인(노란색)을 상징한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는 2019년부터 리뉴얼에 돌입, 무려 3년에 걸쳐 개발됐다.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세종문화회관의 혁신과 새로운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로, 18년 만에 탄생한 새 CI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1978년 개관,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의 유산이자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해왔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는 2019년부터 리뉴얼에 돌입, 개발과 제작 기간에만 3년이 걸렸다.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에 발 맞춰 세종문화회관의 혁신과 새로운 정체성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새 CI가 탄생한 것은 무려18년 만이다.

최근 디자인 업계에서 주목받는 젊고 ‘핫’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 자체가 특이점이다. 세종문화회관 내부 디자인팀을 필두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에는 신신, ‘세종 기본체’를 만드는 타입 디자인엔 양장점이 함께 했다. ‘그래픽 디자인’ 업계에선 “‘한글’이라는 소재는 함부로 할 수 없는 도그마”로 인식되나, 세종문화회관은 한계를 넘어 실험을 감행했다. 원승락 세종문화회관 디자이너는 “세종문화회관의 중요한 아이덴티티를 이야기하면서 한글을 벗어나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며 “세종문화회관의 오랜 역사와 유산, 미래를 향한 비전을 담아 10년, 20년이 지나서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베이직하고 면밀한 로직의 CI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 [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의 아이덴티티는 공공기관 CI의 진화와 대범함을 보여준다. 기존 공공기관 브랜드에서 볼 수 없던 색상의 사용, 한글 서체에서 금기시된 가로와 세로획 굵기의 불균형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신선한 조형미와 독창성이 살아났다.

음으로 완성되는 세종문화회관의 CI [세종문화회관 제공]

기발한 아이디어도 반영됐다. 오선지 위에 적힌 ‘세종문화회관’은 초기 한글의 ‘곁점’을 활용한 서체로 음을 연주한다. ‘도-레-시-(화음)라라-도-(화음)라라-레-레’다. 조금은 슬픈 단조풍의 음악이 나온다. 원 디자이너는 “이 음악을 통한 뮤지션과의 협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를 활용한 워크웨어 [세종문화회관 제공]

CI는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한다. 단순히 브랜드 리뉴얼이나 기념품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진화했다. CI를 만들기 위해 들어본 세종문화회관의 수많은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동화책(브랜드북)을 만들었고, 무대 엔지니어가 입는 워크웨어도 제작했다. 새로운 방식의 홍보이자, 구성원을 결집시키는 역할이다. 원 디자이너는 “CI에 구성원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우리 모두가 들러리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라는 인식이 중요했다. 이 과정을 담아 브랜드를 알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CI로 제작한 굿즈[예술의전당 제공]

■ 예술의전당, 국영문 결합형 CI…이우환의 캘리그라피

▶ 키컬러 : 빨강(레드).

▶ 의미 : 개관 25주년을 맞은 2013년 국영문 결합형 CI가 탄생했다. 한국의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국제적 사인’으로서도 식별이 가능한 CI로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국문의 ‘예술의전당’ 위로 낙관 형태의 영문명을 조합했다.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기관’이라는 브랜드로의 예술의전당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방법이다.

예술의전당은 개관 25주년을 맞은 2013년 국영문 결합형 CI를 새롭게 선보였다. 한국의 전통미와 ‘국제적 사인’으로서의 식별 기능을 두루 지닐 수 있는 CI로 디자인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으로 오랜 시간 자리해왔다. 예술의전당에 따르면 2013년 CI를 다시 개발할 당시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됐던 것은 통일성과 국제성이다. 예술의전당의 과거 CI는 영문 에스(S)자가 승무 형태로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꾸준히 지적된 점은 이 CI로 예술의전당을 떠올리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특히 예술의전당의 영문인 ‘서울아트센터(Seoul Arts Center)’가 별개의 기관처럼 인식됐고, ‘서울’이 강조되니 지역적 한계가 두드러졌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25주년 기념으로 변경된 CI에선 예술의전당이 국내 문화예술계를 선도하는 기관이자, 세계 기반의 문화예술기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서체다. 1988년 숙명여대 안정언 교수 연구팀이 예술의전당만을 위한 이른바 ‘예술의전당’ 서체를 개발했다. 글꼴은 동국정운을 현대화했다. 사각의 틀에 의존하던 기존의 한글 서체의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특이하다. ‘술’의 시옷, 당의 ‘이응’이 익숙한 조형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국문 우측 상단으로 이어지는 영문 낙관도 주목해야 한다. 국공립문화예술기관 중 유일하게 ‘거장의 손길’을 더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 화백이 직접 쓴 캘리그라피다. 특히 서예기법의 붓글씨로 영문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문화예술기관으로서 지향하는 동서양 예술의 조화가 CI에도 반영됐다. “글로벌 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 예술의 위상과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상징했다”는 설명이다.

■ 국립극장, 중구난방 심볼에 통일성 강조…전통 요소 반영

▶키컬러 : 오방색, 초록색.

▶의미 : 창립 50주년을 맞은 2000년 극장의 통일된 이미지 형성과 시각 환경의 개선 등을 위해 CI를 도입했다. 로고의 하단은 국립극장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외관을 단순화해 표현했다. 그 위로 다섯 개의 율동적 방점을 찍었다. ‘민족의 흥과 끼’를 표현한 요소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2000년 국립극장은 통일된 이미지를 주기 위한 새로운 CI를 도입했다. 로고의 하단은 국립극장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외관을 단순화한 모습이다. 상단엔 다섯 개의 율동적 방점이 찍혔다. [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을 상징하는 요소는 많다. 서울 남산 자락 아래, 동국대학교 인근이라는 지리적 특성, 전통문화를 이으면서도 현대화, 세계화하는 공간. 가장 큰 무게는 명칭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극장이라는 점이다. 국립극장 창립 50주년이 되던 해에 지금의 새로운 CI가 태어났다.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국립극장만의 로고와 고유의 색상을 갖는 것이었다. 특히 다양한 예술단체를 거느린 국립문화예술기관으로의 ‘통일성’이 요구됐다. 이전의 국립극장을 보여주는 심볼마크는 색상, 서체 등에 통일감이 없었다. ‘국립’ 문화예술기관임에도 통일되지 않고 중구난방 펼쳐지는 각종 공연 홍보물들은 이곳의 역량과 무관하게도 낡은 이미지를 안겼다.

이 시기에 국립극장은 하나로 통합된 상징적 로고로 극장의 이미지 개선을 시도했다. 2000년 처음 만들어져 2012년 리뉴얼된 것이 지금의 형태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로고의 다섯 개의 방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공간임을 강조하기 위해 전체적으로는 전통적 느낌의 붓 터치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색상은 오방색을 바탕으로 남산의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초록색을 추가했다.

현재도 이 로고는 포스터 등의 홍보물부터 도로변에 설치되는 표지판, USB, 에코백, 자석 등 다양한 극장 기념품에 활용되고 있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산하 예술단체도 이 로고를 사용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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