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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조각투자, 이제 시작이다

투자(投資)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미래에 돌아올 이익에 대한 기대감은 투자의 근간이 된다. 인간은 이따금 이익에 눈이 멀어 투기 광풍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꾸준히 건전하고 자유로운 투자의 기반을 닦아왔다.

최근 ‘조각 투자’가 화두다. 어떤 자산을 매입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그것을 여러 투자자에게 잘게 쪼개 배분하는 모델이다. 고가의 빌딩, 자동차, 명품 같은 눈에 보이는 자산은 물론이고 음악 저작권도 투자의 대상이 된다. 기존 ‘지분투자’라는 개념과 유사하지만 훨씬 촘촘하게 조각을 내 고액의 자산에 접근할 수 있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는 투자 형태이다.

최근에 세간의 주목을 받은 A사의 투자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자. A사의 계열사인 B사는 ‘저작권자’로부터 ‘저작재산권’을 양수하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대해 ‘저작권료 분배청구권’을 갖게 된다. 이 권리를 기초로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권리를 발행해 A사에 귀속시킨다. A사는 이렇게 얻은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다시 임의의 지분으로 쪼갠다.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경매 방식으로 발행해 준다. 결국 투자자들은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추후 정산과 이익 분배가 이루어진다. 대형 자산을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은 펀드나 리츠 등이었으나 플랫폼 구조를 통하여 보다 간편하고 또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조각 투자가 시장에서 소위 혁신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자 투자 리스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말 조각 투자에 대한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였다. 더불어 증권선물위원회는 A사의 모델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조치안을 의결했다. 다만 이미 A사 플랫폼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고자 이 조치를 6개월 유예했다. 당국은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이란 개념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증권의 성격을 지녔기에 결국 자본시장법의 규율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시 의무, 영업 규제 등 감독 당국의 감독 아래 놓인다.

이와 함께 혁신성을 살리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는 ‘조각 투자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분할해 취득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경우엔 민법 및 상법을 적용하고,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지분만큼 청구권을 가지는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더불어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특례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해(▷혁신성 있고 필요성이 인정될 것 ▷투자자 보호 체계를 충분히 갖출 것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분리할 것) 조각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닦았다. 이러한 감독 당국의 움직임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금융 당국은 혁신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개의 정책목표를 모두 충족하고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획일적인 룰을 만들어 톱다운(Top down) 식으로 규제하기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조치하면서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시장에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사업의 성장동력을 꺾지 않기 위한 고뇌가 느껴진다.

최근 가상자산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줄 기준이나 제도는 마땅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가상자산시장은 혁신성 못지않게 투자자의 보호도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금융 당국은 혁신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개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창의적인 조치’ 및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 시장조성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선순환의 조각 투자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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