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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은 뜨겁게, 과정은 쿨했던 ‘즐림픽’
17일 스포츠축제가 남긴 것은
메달 못따도 순간순간을 즐겨
개성 넘치는 인터뷰 재미 더해
팬과의 SNS 적극 소통도 화제
메달 지상주의와의 결별 무대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13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2조 경기를 마친 뒤 경기 도중 충돌한 캐나다 스티븐 뒤부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스노보드 이상호 [연합]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연합]

도전은 뜨겁게, 결과는 쿨하게. 젊은 태극전사들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온 몸을 던져 승부했고, 결과엔 깨끗하게 승복했다. 패자를 위로하는 품격을 보였고, 뜻하지 않게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까지 길렀다.

20일 폐막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메달지상주의의 과거 세대와 확실히 결별한 무대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태극전사들은 이번 대회서 “올림픽을 즐기고 싶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과정이 중요했고 앞으로의 내 성장을 믿는다” 등의 말을 약속한 듯이 쏟아냈다. 지난해 2020 도쿄 하계올림픽서 높이뛰기의 우상혁, 배구 김연경처럼 메달 없이도 충분히 행복했던 모습을 이어받은 듯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1500m 동메달리스트 김민석은 올림픽 전 “우상혁 선수가 도쿄올림픽서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외치며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실제 경기에서 “될대로 되라지,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할 건 다 했으니까”라고 담담히 순위 결정을 기다렸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추보이’ 이상호는 세계랭킹 1위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아쉽게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4강 진출에 실패됐다. 하지만 그는 “메달 못딴 건 아쉽지만 후회없이 경기를 하겠다는 목표는 이뤘다. 후련하다”고 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도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차준환은 남자피겨 역대 최고성적인 5위에 오른 뒤 “올림픽의 순간순간을 느끼려고 했고 기억하려고 했다. 그 목표 안에서 잘해낸 듯해서 뿌듯하다”고 했다. 김연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여자싱글 6위 유영도 “점수는 조금 아쉽지만 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편파판정의 피해를 입은 쇼트트랙 선수들은 스스로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는 총명함과 지혜를 보여줬다. 황대헌은 남자 1000m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결승행이 좌절된 후 자신의 SNS에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명언(‘벽을 만나면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올라갈 건지, 뚫을 건지, 우회할 건지 고민하라’)을 인용해 마음을 다잡은 뒤 1500m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메달 종목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선수들도 행복한 올림피언이 됐다. 스켈레톤 김은지는 25명중 23위를 기록했지만 밝게 웃었다. 경기를 마치고 카메라를 향해 펴 보인 그의 장갑에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적혀있었다.

크로스컨트리의 한다솜은 SNS를 통해 “메달 획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저는 계속해서 한계에 도전하고 훈련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쟁자들을 품는 아름다운 동료의식도 보였다. 김민석은 메달 실패 후 눈물짓는 중국 선수 닝중옌을 토닥이며 한참이나 위로했고, 황대헌은 자신과 충돌하면서 순위가 밀린 스티븐 뒤부아(캐나다)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대회기간 유튜브와 SNS로 부지런히 팬들과 소통하며 올림픽을 즐기는 선수들도 많았다. 구독자 100만명을 넘어선 쇼트트랙 곽윤기 유튜브 계정에는 설날에 선수들이 맞절하고 세뱃돈을 주고받는 영상, 외국 선수들과 ‘오징어게임’ 장면을 재현하는 영상들이 올라와 즐거움을 줬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젊은 선수들이 올림픽을 온전히 즐기는 문화가 2010 밴쿠버 올림픽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최 평론가는 “당시 이상화 모태범 곽윤기 등이 시상식에서 보여준 태도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런 분위기가 도쿄 올림픽을 거쳐 베이징 동계올림픽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욕망의 주체가 국가·민족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이같은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확실한 개인적 동기를 갖고 올림픽에 임하기 때문에 승부에선 최선을 다하고 경기장 밖에선 자유로운 SNS 소통과 개성넘치는 인터뷰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같은 젊은 세대의 올림픽 문화는 앞으로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범자 기자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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