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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청 책임 어디까지”…‘처벌 1호’ 피하려 산업계 안간힘
현실화된 ‘오너 처벌’에 떠는 기업들
안전 컨트롤타워 신설·은퇴자 재채용
안전관리 인증 취득·AI 플랫폼 적용도
현장에선 “하청업체 직원 통제 어려워”

“협력사에서 사고가 나도 원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데, 3차, 4차 협력업체까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오는 27일 이후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거나 다치는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인은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벌금, 징벌적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산업계는 사고를 막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모호한 법 조항과 과도한 처벌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작업 현장에서 고온이 발생하고 무거운 중량의 원료 운반이 잦은 철강업계는 대표적으로 중대 재해가 잦은 산업 중 하나다. 그만큼 중대재해법 대응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부문장인 김학동 부회장 산하에 안전보건 및 환경 분야 관리 체계를 담당할 안전환경본부를 설치했다. 최근에는 현장 설비의 특성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퇴직자를 안전 관련직무로 다시 채용했다. 3~6개월씩 계약직으로 채용해 직접 현장에서 안전을 챙기는 역할을 담당한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8월부터 안전·보건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안전보건총괄조직을 확대 신설했다. 안전 관련컨설팅을 진행하는 한편 사내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알리는 캠페인도 지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세아그룹은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각 사업장에 대해 안전점검을 진행하는 한편, 세아베스틸, 세아창원특수강 등 생산현장에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안전관리 플랫폼을 적용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플랫폼은 생산현장에서 작업자의 안전 위반행동을 감지하고, 위험구역에 진입할 경우 착용한 스마트기기를 통해 회피 알람을 제공하고 관련부서에 실시간 긴급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 재해를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는 게 철강업계의 고민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하청업체 직원이나 일용직은 직고용 직원에 비해 안전의식이나 업무숙련도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데 인원이 자주 교체되다 보니 안전교육에도 어려움이 크다”며 “협력업체 사고도 원청에서 책임지라고 하다 보니 ‘1호 처벌만 피하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용접 등 위험작업이 많아 산업재해가 빈번한 조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현대중공업은 안전 부문 인력 20%를 증원해 안전조직을 강화했다. 신규 위험성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현장 유해요인 확인 개선에도 나섰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안전관리인력을 확대하거나 관계자 대상 강좌를 여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말 이두희 최고안전책임자(CSO) 겸 생산본부장(부사장)을 각자 대표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오일뱅크도 안전생산본부장인 고영규 부사장을 CSO로 선임하고 산하에 안전 환경 관련부서를 관리하고 있다.

현장 안전대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제 인증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장 안전 점검, 설비 노후화 등 위험요소 사전 파악을 통해 안전한 작업환경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사내 환경안전 시스템과 임직원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모든 제조사업장은 지난해 말 기준 ISO 45001 인증(산업안전보건 경영시스템 국제 표준)을 취득하고 국제 표준에 맞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위험을 감지한 현장작업자들이 직접 조업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제도도 활성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중대 재해 관련 시행 정도를 전사 조직별 핵심 성과지표에 반영하고 있다. 협력업체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도 줄이기 위해 도급자 안전관리를 위한 전산 시스템도 구축했다. 현대차는 최근 CSO직에 국내생산담당 임원인 이동석 부사장을, 기아는 노무전문가인 최준영 대표이사 부사장을 CSO에 선임했다.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두고도 시행규칙이 확정되지 않고 해석이 모호해 대응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기업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회원사 21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경영 방침 수립, 예산 편성 및 집행, 위험성 평가 절차,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사항 이행’ 관련 기업들은 평균 59%만 진행됐다고 답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에서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는 43.2%가 ‘모호한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을 꼽았다. 법조항이 모호하다 보니 기업 대응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전담조직을 신설하거나 사규나 매뉴얼 등에 안전담당 책임자와 전담부서의 업무 규정이 명확하게 갖춰져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30%대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최고경영책임자(CEO)가 감옥까지 갈 수도 있는 법이다 보니 기업들이 긴장해서 대응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대응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서 “법 내용이 예방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원호연·문영규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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