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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라이프] 억울함과 공포, 뭣이 더 중헌디?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최근 방영분에서 댄서 허니제이는 귀갓길에 자신을 공격한 괴한을 물리친 무용담을 들려줬다. 다른 방향으로 가던 남성이 자기를 따라오는 것 같아 피하려 했으나 결국 습격을 받았는데 그대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당하기만 하면 억울할 것 같아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리를 지르며 저항을 시작했고 그에 당황한 괴한이 가방을 뺏어 달아나려 하자 날아차기로 쓰러트려 가방도 뺏기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얘기를 듣던 한 남성 출연자의 반응이었다.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려 했다던 허니제이가 “내가 오해한 거면 미안하잖아, 생사람 잡으면 안 되니까”라고 했을 때 “아주 좋은 자세야”라고 맞장구를 친 것이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 사이에서 “위험에 직면한 여성의 현실 공포보다 혹시 억울할지도 모를 남성의 기분을 살피는 게 더 중요한가”라는 취지의 비판 의견이 거세게 일어났다.

사실 필자가 호신술에서 제시하는 상황 중 하나인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상황’에 대한 솔루션은 허니제이가 했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길로 가보거나 먼저 지나가도록 유도해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함과 함께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바꾸는 것이다. 우선 상대를 볼 수 있는 각도에서 거리를 두고 상대의 인상착의와 체격 등을 파악하는 것이 좋고 ‘먼저 지나가시라’고 말을 거는 등의 방법으로 더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가져오는 편이 좋다. 그렇게 내가 상대의 등을 보는 상황이 되면 다른 골목으로 슬쩍 들어간다든지, 휴대전화를 꺼내 신고할 준비를 한다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이 더 많아진다.

따라서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여기까지 얘기가 나왔을 땐 “잘했다”고 맞장구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해한 거면 미안하잖아”라고 했을 때는 “아니, 그건 미안해할 일이 아니에요”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는 순간 ‘인생을 망친 여자’가 되는데 그렇다고 섣불리 저항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일상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뒤에서 누가 따라오거나 길 건너편에 낯선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강박적인 공포를 느끼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게 당연하다. 사실 ‘상대 기분이 나쁘면 어쩌지’ 하는 생각조차도 그런 공포에서 기인한 이중 강박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정도의 얘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상황에서 충분히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의 결과가 얼마든지 긍정적일 수 있고, 설령 부정적이라 해도 자신의 인생 전반은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저 남성 출연자의 무의미한 말 한마디보다 허니제이의 이야기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적극적으로 폭력에 맞서 승리한 여성의 경험담으로서 더 많이 전유됐으면 좋겠다. 엘리트 체육인도 아니고 체구도 작은 여성이 남자 괴한을 물리친, ‘여자는 남자 못 이긴다’ 같은 얘기의 반증 사례로도 좋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그 장면을 CCTV로 본 경찰들이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봤을까.

김기태 A.S.A.P. 여성호신술 대표강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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