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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한의 住土피아] 부동산 정책, 올바르게 사과하는 법
송구하다면서 하던 대로 하겠다는 홍남기 부총리
부동산 실패에 사과 하지 않는 정부
역대 최저로 떨어진 부동산 정책 불신 불러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인간관계를 다루는 각종 커뮤니케이션 관련 서적에 흔하게 나오는 ‘올바르게 사과하는 4가지 방법’은 이렇다. 먼저 ‘전제를 붙이지 마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거다. 진정성이 떨어지고 화만 키울 수 있어서다. 두 번째는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라’다. 사과는 단순히 “미안해” 한마디로 끝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반복적으로 사과하라는 거다.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상대방이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세 번째는 ‘중간에 핑계를 대지 마라’다. 사과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상대방이 사과가 아닌 변명이라고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다. 제대로 된 사과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다.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건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신뢰가 다시 생길 수 있다. 어떤 식으로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지 구체적으로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들어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사실 이건 인간관계 뿐 아니라 국가대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서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사과의 기본 원칙을 모두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부의 잘못으로 국민이 피해를 입었는데, ‘정부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국민은 그런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했던 말이 딱 그랬다. 그는 “부동산이 안정되지 못해서 정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놓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적 조치를 다 했다”고 변명했다. 당혹스러운 건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는 대목에서였다.

‘집값이 안정되지 못해 송구하다’, 그런데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는 건 누가 봐도 사과가 아니다. 정말 송구하다면 ‘하던 대로 하겠다’고 말할 리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

사실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집값 불안에 대해 정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집값은 대외경제 여건이나,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보는 태도를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4년 5개월이 지나는 동안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26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도 역대 최고 수준의 부동산 폭등을 야기했다. 대책 때마다 대내외 경제 여건과 투기세력 핑계를 댔다. 그 사이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은 계속 커졌다.

지난 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평가 여론조사 결과는 문 정부 부동산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6%,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9%였다. 15%는 평가를 유보했다. 긍정 평가 비율은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부정 평가 비율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8월 같은 조사에서 44%가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이번 조사에서 6%를 기록해 38%포인트나 하락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 상승·집값이 비싸서’(42%)가 가장 많았고, ‘정책 효과 없음·근본적 대책 아님’, ‘대출 억제 과도함’, ‘서민 피해·서민 살기 어려움’, ‘공급을 늘려야 함·공급 부족’, ‘일관성 없음·오락가락함’, ‘규제 부작용·풍선 효과’, ‘임대차 3법 관련’ 등이 뒤따랐다. 대부분 잘못된 정책에 대한 불신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 되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검토해야 한다. 어쨌든 결과(집값 폭등)는 나왔고, 정부 정책이 이런 결과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을 미쳤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전제를 붙이지 말고’, ‘진심을 다해’, ‘핑계를 대선 안된다’. 무엇보다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남은 임기 부동산 정책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듣고 싶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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