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아우프비더젠 메르켈…조용한 카리스마 16년, 유럽 통합·강한 獨 남겼다
첫 여성·동독 출신·자진 사퇴 총리…최장수 총리 타이틀도
정치적 수사·약속 지양…양보 통해 ‘모든 독일인의 총리’ 지향
탈원전·징병제 폐지·동성혼 합법화·팬데믹 대응선 ‘카리스마’
2008 금융위기·유로존 위기 극복…獨 경제 ‘유럽의 엔진’으로
바이든·마크롱 등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지도자 1위 오르기도
재임 16년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매년 12월 TV에 출연해 신년 연설을 한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16년간 이어진 앙겔라 메르켈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

메르켈 독일 총리에겐 독일의 첫 여성·동독 출신 총리, 독일 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 전 총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최장수 총리란 타이틀이 새겨졌다. 또 그는 총선 패배로 밀려나지 않고 박수 칠 때 스스로 총리 자리를 내려놓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여성 총리를 뜻하는 단어 ‘칸츨러린(Kanzlerin)’를 남성 총리 ‘칸츨러(Kanzler)’보다 익숙하게 만들어버린 사람. 그가 떠난 자리엔 경제 부흥을 통해 강해진 국력과,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EU)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한 독일이 남겨졌다.

▶양보·경청의 리더십…탈원전·코로나 앞에선 카리스마= 메르켈스럽다(Merkeln).

‘말없이 생각만 하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 등의 부정적 의미로 만들어졌던 신조어지만, 지금 돌아보면 메르켈 총리의 성공 이유를 담고 있는 말에 가깝다.

거창한 정치적 수사나 약속을 지양하고, 특정 정체성이나 주장에 힘을 싣지 않지만 ‘모든 독일인의 총리’이기 위해선 고집을 꺾지 않는 메르켈스러움은 그의 롱런에 제1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메르켈 마름모(Die Merkel-Raute)’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특유의 손동작. 과거 메르켈 총리는 ‘메르켈 마름모’ 또는 ‘메르켈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특유의 손동작에 대해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모으고 있다”면서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로이터]

4차례 임기 중 소속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단독 과반을 차지한 것은 단 1번뿐이었지만, 양보와 경청으로 ‘좌파’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을 12년이나 문제없이 이끌었다.

메르켈스러움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지점은 ‘탈원전 정책’이었다.

2009년 첫 재선을 준비하며 중도 좌파로 지지층을 확장하기 위해 기존 입장과 달리 탈원전을 공약했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참사 이후 정책의 박차를 가했다.

2010년 징병제 폐지, 2017년 동성혼 합법화 등의 사안에 대해선 통합과 안정을 위해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는 과단성도 보여줬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당시엔 12분간의 대국민 연설을 통해 과학도로서 상황과 대안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무리 없이 고강도 봉쇄 정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묵묵하지만 부지런하고, 퉁명스럽지만 실용적’인 동독인의 특징을 공유하는 메르켈 총리는 재임 중 여성 권리를 직접 대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16년간 역대 총리 누구보다 훌륭히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 그 자체로 여성이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독일을 유럽의 병자(病者)에서 유럽의 엔진으로= 메르켈 총리는 수차례 맞이한 대내외적 경제 위기를 특유의 협상력과 결단력으로 헤쳐나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을 상대로 4800억유로(약 662조원) 규모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전격 편성, 국민의 일자리를 지켜냈다.

16년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공식 석상에 입고 등장한 복장들. [로이터]

2009년 그리스 발(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 위기에선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강력한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실시토록 압박을 가하며 해체 위기에 빠졌던 유로존을 구해냈다.

이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는 포용력을 잃지 않으며 그리스·스페인 등과 구제금융을 직접 협상했고, 독일의 희생을 바탕으로 EU 시스템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분열 속 단결을 강조했다.

스페인 현지 언론 엘 파이스는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인류애와 공감력, 강한 도덕적 신념과 통합 의지 덕분에 독일이 유럽의 리더가 됐다”고 평가했다.

‘퍼주기’ 논란으로 자국 내 비판이 높아질 때도 메르켈 총리가 건재할 수 있던 것은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독일 경제를 ‘유럽의 엔진’이라 불릴 정도로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 통계청, 로이터]

메르켈 총리 취임 당시 10%를 훌쩍 넘긴 독일의 실업률은 16년이 지난 지금 5~6%대로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 독일 사회의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히던 구(舊)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까지도 크게 좁혀졌다.

이런 결과는 퇴임할 때까지 80%에 육박하는 독일 국민들의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정치 지도자…난민 문제는 남겨진 숙제= 메르켈 총리에 대한 전 세계 국민들의 신뢰도가 높아질수록 독일의 국제적 위상 역시 동반 상승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6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7%가 “메르켈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답했다.

[퓨리서치센터, AFP]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을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지도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에 힘입어 독일(79%)이 미국(62%), 중국(27%) 등을 제치고 가장 신뢰도 높은 지도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고립주의’, ‘국수주의’로부터 다원주의를 구한 ‘자유세계의 수호자’ 등으로 불린 것도 대표적인 예시다.

다만, 빛이 강했던 만큼 메르켈이 남긴 그늘도 짙게 드리워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말로우 조류공원에서 앵무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AP]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난민 정책이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Wir schaffen das!)’란 슬로건을 내세워 유권자와 파트너 정당인 CSU를 설득했고, 약 140만명에 이르는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이른바 ‘무티(Mutti, 어머니)’ 리더십은 극우 세력의 약진과 인종차별 범죄의 급증,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잇따른 테러 등으로 상처 입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