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클라라 주미 강·김선욱, 솔직하고 깊이 있는 가을밤의 대화 [리뷰]
3일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동등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대화 
클라라 주미 강, 김선욱 [빈체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두 사람의 대화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힘의 균형’을 이뤘다. 어느 한 쪽으로의 쏠림 없이 동등하게 오가는 대화의 시간. 무대 위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은 마주 보지 않았지만, 이들의 연주는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들렸다.

두 사람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기로 논의한 것은 2년 전인 2019년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공연기획사 빈체로를 통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녹음할 기회가 30대 초반에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김선욱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이 작업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감은 동료 음악가로부터 얻었다. 주미 강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업하기로 한 것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음악에 대한 헌신과 깊이가 영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첫 녹음 이후 음반이 나오기까지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지난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 번의 연주회가 이어졌다. 10개의 소나타를 3일에 걸쳐 연주한 것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등한 위치에 놓고 써내려간 곡이다. 첫 날이었던 지난 12일 공연이 베토벤 초기 모습으로 청력을 잃어가는 것을 알게 돼 고뇌하는 모습이 드러났다면, 두 번째 공연(14일)에선 보다 솔직한 감정선이 오갔고, 마지막 날 공연(15일)엔 ‘봄’이라는 별칭이 붙은 밝은 기운의 소나타5번과 내면의 소리를 듣는 10번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특히 둘째 날은 클래식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바이올린 소나타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해 더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의 두 사람은 보다 깊이 있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주미 강과 김선욱의 연주는 상대에게 애써 맞추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이끄는 연주와는 달랐다. 서로의 에너지는 같았고, 서로가 상상하고 바라보는 모습이 닮았다. 오선지 위에서 주고받는 음표들은 문답법을 나누는 철학가들처럼 보였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대위법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제 모습 그대로 존재하게 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선 동등함을 넘어 팽팽하게 연주를 나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브릿지타워의 기교에 매혹돼 쓴 소나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며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했으나, 정작 크로이처는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며 연주하지 않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맞서 접전을 벌이는 듯한 곡이다.

주미 강과 김선욱은 힘껏 달려나가지만, 격렬한 싸움을 원치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굳이 싸워야 한다면 ‘존댓말을 하며 싸우는’ 연인의 모습. 크로이처 소나타의 1악장은 실제로 연인들의 싸움처럼 처절하고 비극적이며 때로는 신경질적이다. 그러다 새로운 세계를 열듯 이어지는 2악장에선 네 번의 변주가 귀를 홀린다. 김선욱의 왼손이 경쾌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다, 주미 강이 32분 음표를 유려하게 이어가고, 그러다 극심한 우울에 빠져버린다. 오래 머무를 이유는 없다는듯 재빨리 빠져나와 우아함을 찾는다. 솔직해진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2악장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8분의 6박자의 타란텔라 춤곡이 이어지며 분위기를 바꾼다. 1악장에서의 격렬함은 3악장의 화려함으로 치환돼 길고 긴 대화는 마무리된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로 쌓아올린 연주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가 들려주려는 진짜 이야기에 가까웠다. 조화로움의 미덕을 보여준 무대였다. 주고받는 연주는 어긋남 없이 들어맞아, 이 무대에 오기까지 이어졌을 지난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날 두 사람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1악장과 야사 하이페츠가 편곡한 브람스의 ‘묵상(흐르는 멜로디처럼)’을 앙코르로 골랐다. 신중하고 학구적인 두 사람이 남긴 가을밤의 서정은 여운이 짙었다.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