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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m·100m 자존심이 걸렸다”…아파트 문주 디자인 ‘더 크고, 더 새롭게’ [부동산360]
2000년대 초반 브랜드아파트 등장과 함께 급부상
머릿돌 역할→게이트 형식→단지별 최고급 특화 디자인
화강암 석재 외에도 알루미늄, 스테인레스 등 사용재료 다변화
수경시설 함께 배치해 자연친화적 경관 조성 노력
반포 디에이치라클라스 문주. [현대건설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몇 년 전 강동구 상일동에서 신축 아파트가 한꺼번에 들어섰죠. 그 당시에 A브랜드 아파트가 문주를 엄청 크게 짓고 있었는데 맞은편 B브랜드 아파트 주민들이 그걸 보고 이미 기초공사가 끝난 문주를 헐고 다시 지었어요. 아파트에서 문주는 자존심 경쟁을 하는 요소가 분명합니다.”(건설업계 관계자)

아파트도 세대를 탄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 아파트는 1990년대에 지어졌겠구나, 아직 입주한 지 2~3년이 채 안 된 아파트겠구나’ 하고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아파트 외관에서 눈치챌 수 있지만 요즘은 아파트단지의 ‘대문’ 역할을 하는 ‘문주(門柱)’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의 시작과 함께 도입…초기엔 ‘장식적인 표지판’ 개념

문주는 2000년대 초반 ‘롯데캐슬’ ‘래미안’ ‘자이’ 등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함께 나타난 아파트 건설 양식이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현대아파트’ ‘우성아파트’ 등 단순한 작명에 아파트 외벽에 쓴 간결한 표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브랜드가 생기면서 ‘표지판’ 역할을 하는 ‘대문’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2000년대 초기 문주 디자인 예. 2003년 준공된 방배래미안타워. [삼성물산 제공]

초기 문주 디자인은 단지명을 표시한 머릿돌 느낌이 강했다. 석재 조형물, 가벽, 외벽 담장들을 활용한 독립 조형물이 ‘여기서부터 아파트단지가 시작된다’는 신호를 줬다. 장식적으론 화려했지만 멀리서 봤을 때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존재감을 뽐내진 않았다.

그러다가 차츰 ‘우리집은 비싼 집이야’라고 외부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욕구가 문주를 통해 발현됐다. 시선이 가장 먼저 꽂히는 곳으로, 차와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를 크고 웅장하게 짓게 됐다. 게이트형의 문주는 통로 폭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결정됐다.

1999년 처음 등장한 롯데건설의 브랜드 아파트인 ‘롯데캐슬’은 이름에 걸맞게 문주 디자인도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올드하다’는 반응이 나오며 2015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치게 됐다. 사진은 리브랜딩 과정을 거치기 전 문주의 초기 디자인 형태. [롯데건설 제공]

2007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이트 형식은 직선이 아닌 사선, 아치, 삼각형 등의 다양한 시도와 조명 적용이 경쟁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다 건설사가 ‘이래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 구현이 안 되겠다’는 자성을 거쳤다. 우리 브랜드 아파트라면 전국 어디에서든 알아볼 수 있게 표준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과도기적으로 나타났던 브랜드 표준형식의 문주 디자인의 예. 서울 역삼동 래미안 펜타빌(2007년 준공)의 문주. [삼성물산 제공]
더 크고 웅장하게, 어디서도 본 적 없는…높아진 고객 요구사항에 맞춰라

표준화 트렌드는 최근에 와서 또 한 번 뒤집혔다. 서울 내에서 대규모 택지개발이 없어졌고 대부분의 신규 아파트 공급은 재건축·재개발사업이다. 재건축사업성이 높은 강남권 단지들은 그 입지 자체가 아파트 자산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지에 (건설사) 브랜드가 먹혔다고까지 말한다”면서 “건설사 브랜드명보다 지역을 알 수 있는 펫네임(Pet name)을 어떻게 지을지가 조합원들의 주된 관심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다 보니 재건축조합마다 특색 있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가장 크고 화려한 문주를 시공사에 주문한다는 것이다.

푸르지오써밋의 문주 디자인은 큰 스케일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하이엔드 브랜드 단지에 걸맞게 진입부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문주 석종은 화이트톤의 고급 화강석을 사용했다. 반포써밋 아파트의 문주. [대우건설 제공]
530m·벽천·알루미늄시트·입식 열주…“여기가 리조트인가요?”

건설사들이 최근 준공했거나 짓는 아파트단지들의 문주는 저마다 특색을 보인다. 물론 그만큼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다.

유선형 디자인을 탑재한 문주 형식. 주재료는 스테인레스 스틸 패널이다.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 문주. [현대건설 제공]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맨션3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는 거대한 규모에 유선형으로 디자인된 주 출입구 문주와 웨이브(Wave)형 특화 외관을 지녔다. 16개의 대형 철제에 약 2400여개 스테인레스 스틸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든 비정형 문주는 야간에는 1만2209개의 조명이 불을 밝힌다.

아파트단지 배치가 좁고 긴 형태라 대로변에 접한 면적이 적은데, 이 문주를 통해 도로변 가시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다.

길이 70m에 달하는 서초구 래미안리더스원 아파트 문주 야경. [삼성물산 제공]

래미안은 서초구 리더스원 아파트 문주를 커다란 수경시설로 만들었다. 문주 디자인을 담당한 이미진 삼성물산 수석은 “위압감이 들지 않도록 하되, 굉장히 크게 만들고 싶었다”면서 “수경이나 식재 등 조경시설이 연계되면 문주의 크기가 눈에 띄지 않고 시원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구 역할을 하는 인조대리석은 어두운 밤에 통행자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줄 수 있고,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시냇물과 그 아래에서 물을 받아내는 연못은 꼭 주민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누구든 즐길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반포우성을 재건축한 ‘르엘 신반포 센트럴’(2022년 8월 준공예정) 문주. [롯데건설 제공]

롯데건설이 짓는 ‘르엘 신반포 센트럴’(2022년 8월 준공 예정)는 문주 길이가 약 100m에 달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기존에 많이 썼던 석재를 탈피해 알루미늄 시트로 시공한다”면서 “조명을 아주 화려하게 해 야간 인지성과 상징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상가동까지 연결한 문주 형태는 그 규모가 더욱 커진다. 아크로드레브372 문주 설계안. [DL이앤씨 제공]

DL이앤씨는 무려 530m 길이의 문주를 짓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북가좌6구역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수주에 나서면서 ‘아크로 드레브 372’(제안 명칭) 문주를 상가와 연결되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게이트가 좌우에 있는 상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무려 530m 길이로 설계됐다.

입식 문주 형태. 높이 10m 의 열주가 입구부터 단지 중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서초그랑자이 문주. [GS건설 제공]

GS건설 자이는 서초무지개아파트를 재건축한 서초그랑자이의 문주를 기존의 게이트형이 아닌 입식 문주로 설계했다. 높이 약 10m의 열주가 입주민의 동선을 따라 이어진다. 수경 공간과 어우러진 데다 풍부한 간접 조명이 이목을 사로잡는다.

경사지에 위치한 지형적 약점을 극복한 사례. 마포 염리3구역을 재개발한 마포프레스티지자이의 문주. [GS건설 제공]

그 밖에도 단지 위치가 경사도가 심하다면 엎어진 ‘ㄷ'자 모양의 게이트 대신 불규칙적인 다각형 모습으로 만들어 조형미를 꾀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문주의 형태가 자잘한 장식을 배제하고 대신 매스(덩어리) 자체가 육중해지다 보니 색상은 베이지·밝은 그레이 등으로 밝아진 편”이라며 “검은색 화강암을 쓰면 더 무겁게 느껴져 위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의 문주는 더욱 개방적이고 예술품처럼 될 것”

공공성 챙기면서 입주민 보안도 보장해야

외부인도 아파트 내부 조경 볼 수 있는 신개념 문주 개발

“더욱 예술적인 측면 강조한 조형적 형태될 것”

점점 더 화려해지고 존재감을 뽐내는 문주는 한편으로 ‘외부인에게 위화감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정문 외에도 단지 외측에 담장을 두르고 쪽문을 모두 걸어 잠근 고급 아파트는 ‘공공성’ 이슈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이런 점에 착안해서 새로운 문주 형식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나름의 답도 찾아가고 있다.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는 벽 대신 사이사이가 비어 있는 프레임 형식의 '스트라다'. 단지 외부를 걷는 사람들도 잘 꾸민 조경시설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은 부산 온천 동래래미안아이파크(2021년 12월 준공예정, 실시공은 이미지와 다를수 있음)[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에서 16년간 래미안 문주 등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이미진 수석은 “한때 지자체 등에서 위압감이나 위화감 조성을 우려해 문주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서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공공성을 확충하면 사업주에게 문주를 더 창의적으로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담장을 설치하지 말라’는 공공성 이슈가 부상한 이후로 ‘스트라다’라는 독자적인 문주 디자인을 만들었다.

이 수석은 “입주자들로서는 안전이 중요하죠. 그런데 외부에서 보기엔 ‘뭘 저렇게 철통같은 보안을 해?’라는 대립구도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사적·공적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스트라다’는 프레임 형태라 외부에서 안쪽을 막힘 없이 조망할 수 있다. 나무 등 식재가 틈을 메워 아파트 세대 내부를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차단했다. 입주민들에게 심리적 차단 효과를 주되, 외부인들에게도 보기 좋은 경관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카페 거리와 같이 스트리트 형식의 스트라다.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에 적용된 이미지. [삼성물산 제공]

중장기적으로 웅장한 게이트형 문주는 점점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황태규 롯데건설 디자인팀 책임은 “사실 커다란 게이트형 문주가 없다고 해서 출입을 못한다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단지의 특색을 알리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게이트에서 탈피해서 좀 더 예술적 가치를 띠는 조형적인 형태로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문주는 ‘선’과 ‘면’으로 이뤄진 대문 자체에서 탈피해 복합적인 공간으로 점차 쓰임새를 넓혀가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통학버스를 승·하차하는 ‘드롭오프존(Drop-off zone)’도, 호텔 웰컴 라운지처럼 손님맞이 장소도 돼야 한다. 사물인터넷(IoT)의 발달로 아파트 출입구에서부터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보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 역할도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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