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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성왕 때 인도스님 연기조사 발원으로 창건...국보·보물·지방문화재 알알이 품은 전남지역 ‘종찰’
구례 화엄사 1400여년의 기록
백제 법왕 시절 3000여 스님 화엄사상 꽃피워
임진왜란 땐 승병 조직-日 보복으로 소실 ‘고난’
숙종 때 각황전 건립...58개의 末寺 둔 대사찰
각황전(국보 67호)
화엄석경 [화엄사 제공]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이다. 송광사, 대흥사, 백양사와 함께 전남지역 종찰역할을 맡고 있다.

창건에 관한 기록은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인 연기(緣起) 조사(祖師)의 발원으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 법왕(599) 때 3000여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다고 전한다.

신라 경덕왕(742~764) 때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고, 신라말기 헌강왕(875) 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됐다.

조선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옹, 승인, 부휴, 증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뤘다.

임진왜란(1592~1598) 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해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加藤 正, 가토 기요마사)은 화엄사를 전소시켜 이때 각황전 화엄석경(華嚴石經)도 파손되기에 이른다.

인조(1630~1636) 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 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각황전을 건립했다.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개축으로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다.

화엄사는 수많은 문화재가 보관된 보고(寶庫)이자,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불멸의 명작’으로 꼽히는 사찰이다. 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와 각황전(국보 67호) 등 국보 5점이 있다.

이 밖에 목조비로자나 삼신불좌상(보물 1548호)과 대웅전 삼신탱화(보물 1463호) 등 보물 7점을 비롯해 지방문화재 2점(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재 49호)가 있고 화엄사 매화와 올벚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사시사철 탐방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선원스님을 제외한 재직승려는 55명, 재가자 35명이 재직 중이며, 전남 동부권에 58개 말사를 둔 불교 조계종단의 대사찰이다.

구례(전남)=박대성 기자

parkd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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