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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원의 밤’ 엄태구,연기할 때는 무서운데 인터뷰 할 때는 수줍어하는 이 남자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 엄태구(37)가 지난 9일 넷플릭에서 공개된 영화 ‘낙원의 밤’을 통해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 태구(엄태구)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 재연(전여빈)의 이야기를 그렸다. 차승원도 이들을 쫓는 마 이사 역할로 존재감을 발산한다.

‘신세계’(2013) ‘마녀’(2018)의 박훈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누아르 장르다. 누아르라 하면 어둠의 세계, 범죄, 죽음, 허무 등이 연상된다. 엄태구는 그런 누아르 장르와 썩 잘 잘 어울린다.

엄태구에 대해 변영주 감독은 “물 속에서 어린애를 구해내도 나쁜 생각 때문일 것 같아 보이는 배우”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엄태구는 이글거리는 눈빛 등 비주얼과 낮게 깔리는 허스키 보이스가 합쳐지면 무서움이 느껴지는 배우다. 악역을 잘 하는 비결이 있을까?

이에 대해 엄태구는 “변 감독님께서 아마 영화 ‘밀정’의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할을 보고 말씀 한 것 같다”면서 “비결이라기 보다는 그 순간에 진실되고 진정성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줌’을 통한 인터뷰에서 엄태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껴졌던 거칠고 무서운 모습과는 달리 시종 아이 처럼 수줍어했다. 안경을 끼고 성의껏 답변하는 그에게는 섬세함도 느껴졌다.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안시성’(2017)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라디오스타’에 나왔는데, MC가 왜 엄태구는 안나왔냐고 하자 조인성이 “땀을 많이 흘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낯을 많이 가리는 배우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모습을 뿜어내는지를 생각해보면 직업정신에 투철함을 알 수 있다. 예능에서는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기할때 180도 달라지는 이유를 다시 한번 물었다.

“직업이 배우다 보니까 외적, 내적으로 모두 준비한다. 제 안에는 여러 것이 있다. 가족와 같이 있을때, 친구와 함께 장난 칠 때가 모두 다르다.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다 있다. 현장에서는 긴장된다. 하지만 놀이터처럼 현장에서 유일하게 그런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직업이다.”

'낙원의 밤'의 엄태구는 거칠고 무섭지만, 실제 엄태구는 낯을 가리고 수줍어한다.

그렇게 해서 엄태구는 ‘내성적인 갱스터’ 태구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을까?

“감정 소모가 큰 캐릭터인데, 누나와 조카를 잃은 큰 슬픔을 갖고 있는 태구를 표현하기 위해 상실감과 죄책감을 잘 담으려고 노력했다. 차 추격신, 액션신을 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무술팀이 많은 고생을 했다. 나는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태구를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낙원의 밤’은 제주도가 많이 나온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휴양지 제주와 영화의 상황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기존 누아르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이에 대해 엄태구는 “더욱 더 처절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자연을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차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바다와 노을을 봤는데, 정말 멋졌다”고 했다.

엄태구의 캐릭터 명은 태구다. 그래서 더욱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영화 대본에 태구라고 돼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기함이 컸는데 막상 연기를 하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캐릭터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려고 했다.”

누아르지만 멜로도 있다. 엄태구는 ‘안시성’에 이어 이번에도 멜로가 되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물론 절제된 멜로다. 엄태구 표 멜로 연기의 강점은 무엇일까?

“강점은 모르겠고 멜로 연기를 하고싶다. 멜로가 주가 돼 길게나온 작품은 한번도 못했다. 로맨스 비슷한 작품은 독립영화에서 해봤는데, 멜로가 들어오면 해보고 싶다.”

태구와 재연(전여빈)은 이성이면서 서로를 동지애로 보듬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태구의 불안불안한 삶이 재연을 통해 조카도 생각나게 하고, 같이 물회를 먹을 때는 엄마 생각도 나게 한다. 삶의 끝에 있는 재연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동질감을 깊게 느끼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엄태구는 전여빈의 연기에 감탄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재연이 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표정만으로 싸늘함과 아픔이 잘 전달된다. 창가에서 가만히 있다가 '밥먹으러 갈래요'라는 단순한 대사만으로, 쓸쓸함을 잘 묻어나게 한다”고 말하며 전여빈의 연기를 치켜세웠다.

엄태구는 내면으로도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낙원의 밤’에서도 태구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태구의 행동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공감하려고 했다. 촬영 순간만큼은 비슷한 부분이 잡히는 것 같았다. 특히 가족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는 건 극중 캐릭터나 나의 현실과 비슷했다.”

엄태구는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지금은 어떤 배우로 살고 있을까.

“기적이 맞다. 포기하고싶은 순간은 많았다. 긴장도 많이 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막연한 믿음은 있었다. 6~10년전 작품을 보면 연기가 조금 는 것 같다. 이것만 했기 때문에 이것말고는 취미나 특기가 없다. 이것을 갈고닦아보자며 버텼다.”

그의 답변에는 요즘 직업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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