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팀장시각] 대법원장에게 남은 시간

#1. “사실심만 해온 판사의 수준을 보여주겠다.” 2017년 8월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자신에 대한 파격 인선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 달 뒤 취임식에서는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불명예퇴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2. 2018년 5월 25일 금요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사법농단 사건을 검찰수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28일 월요일 출근길에서 “검찰 고발까지 고려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공식 입장이 주말 새 갑자기 바뀐 셈이다.

#3. 김 대법원장은 올해 초 윤종섭·김미리 부장판사를 이례적으로 유임시켰다. 서울중앙지법에 3년 재직하면 인사이동을 하는데, 윤 부장판사는 6년, 김 부장판사는 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 김 부장판사는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맡았다.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남용해 사실상 재판에 개입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세 장면을 조합해보자. 생각해보면 김 대법원장 입장에선 내심 임종헌 전 차장의 유죄를 바랄 수 있다. 전임 대법원장의 ‘권한남용’이 형사판결로 확인되면 그만큼 자신을 앉힌 ‘파격 인선’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이나 조국 전 장관 사건은 김 대법원장 입장에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왜’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대법원이 아니라 청와대다. 벌써 법원 내부에선 “김미리 부장판사가 올해 안에 선거 개입 사건을 선고하지 않고 계속 미룰 것”이라는 단언이 나온다. 선고결과가 올해 말쯤 나온다면 내년 대선에서 여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대법원장이 유임시킨 김 부장판사는 지난 1년 동안 이 사건 준비기일만 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법원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정권 정당성을 건드릴 수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 개입 사건을 미루고 미룬 끝에 2018년 유죄를 확정했다. 이미 정권이 바뀐 후였다.

어느덧 김 대법원장의 임기가 2년반 정도 남았다. 그동안 ‘좋은 재판’을 구호로 삼았지만 정작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세울 만한 대표 판결이 뭐였는지 남는 게 없다. 판사가 사법행정에 나서는 것을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지난 정기인사에선 사법행정에 정통한 판사들을 대거 대법원으로 불러들였다. 임기가 다 돼가는데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대법원장의 초조함이 느껴지는 인사다.

대법원장은 처음 자신이 취임했던 때의 모습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상고심 개편이나 형사전자소송 도입 같은 치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은 애초에 그와 맞지 않다. 김 대법원장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오히려 사법행정과 거리가 먼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법농단 사태에 검찰 수사가 필요없다고 했다가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돌변한 것이나 청와대 관련 사건 재판장을 유임한 것에 어떤 배경이 작용했는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남은 시간 초심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전임자에게 했던 비판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지도 모른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