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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적북적]340년간 금기어가 된 이름 윤휴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지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

1680년(숙종 6년) 5월20일, 사약을 마시기 직전, 백호 윤휴가 했다는 마지막 말이다. 그의 죄는 송시열로 대표되는 중화 사대주의 사상에 맞서 독보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하고, 부국강병을 내세운 점이었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푸른역사)는 역사학자 이덕일이 10여년에 걸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윤휴의 삶을 재조명한 역작이다.

윤휴의 이름을 말하는 건 최근까지도 꺼려져왔다. 윤휴를 입에 올린다는 건 윤휴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의미했고 불온한 것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우선 주자학의 교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가로서 윤휴를 조명한다. 전란 중에 성장해 특별한 스승이 없어 제약 없이 학문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자는 본래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던 ‘중용’을 33장으로 나누고 장의 끝에 해석을 붙인 후 다시 130개 절로 나눴다. 윤휴는 주희의 이런 구분을 따르지 않았다. 윤휴는 주희의 설을 비판하진 않았다. 그런데 장절 구분을 달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주자를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삼아 신분질서를 강화하고 사대부의 특권을 굳히려 한 서인에게 윤휴는 제거 마땅한 대상이었다.

윤휴는 57세가 돼 조정에 나갔다. 북벌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서인은 내세우는 것과 달리 북벌 불가를 당론으로 삼고 있었다. 북벌은 군주 압박과 특권 유지를 위한 슬로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윤휴는 청나라를 치는 북벌이 실제 가능하다고 봤다. 평민들을 위한 무과인 만인과를 실시하고 전차를 제작하는 등 실제적인 북벌을 추진하려 했다.

죽은 사람과 갓난 아이까지 군포를 부과한 군적수포제 대신 양반 사대부들이 군역을 함께 감당하는 호포법, 남녀구별을 넘어 여성에게도 학문을 가르치는 등 윤휴는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였다.

저자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여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며, 윤휴를 돌아보는 의미를 밝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이덕일 지음/다산 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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