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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병장 후예 장흥 무계고택, 나눔·개방의 마음 [남도종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제주고씨는 탐라국 왕자였던 고말로를 중시조로 모신다. 고말로의 10세손 고중연(다른 이름 고복림)은 고려 때 홍건적의 침략을 피해 도성을 떠난 공민왕을 호위해 군기감사, 장흥백에 봉해져 장흥고씨의 중시조가 된다.

중시조 4세손인 고협(다른이름 고신부)은 고려말 이방원과 동문수학했으나 고려 왕실 인척이라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그를 ‘신부’(신하이자 사부라는 의미)라고 부를 정도로 신뢰를 보냈다.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공신이 됐지만 벼슬엔 나가지 않았다.

고신부의 손자인 고상지(6세)의 아들 4형제 중 고자검이 중종반정에 참여, 정사원종공신이 되고 광주로 이거했다. 9세손인 고맹영(1502~?)은 옥천군수, 이조·호조 참의 등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 고경명은 의병장으로 활약했고, 고경명의 두 아들 종후-인후도 의병활동 중 전사했다. 고인후의 후손 고광순 역시 구한말 의병으로 활약했다.

장흥고씨 고만거종가 무계고택 [남도일보 제공]

고인후의 후손들이 장흥과 창평(담양)으로 나뉘어 세거한 가운데, 중시조 15세 고응수는 장흥에 입향했고, 그의 셋째아들 고만거(1698~1756)가 장흥 평화에 새 종가를 열었다.

21세인 고언주(1816~1886, 호는 정담)는 종택을 중건하고 정원을 조성해 현재의 무계고택에 이르도록 했다. 이 때 조성된 연못이 ‘정담’이다. 23세 고재극(1862~1901)이 목릉참봉을 지내고 낙향해 종택을 중수했다.

‘무계’는 고재극의 손자인 24세 고영완(1914~1991)의 호이다. 무계 고영완은 독립운동으로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는 일본에 유학한 법학도였지만 독립운동 전국조직을 준비하다 옥고를 치른 후 종가를 지키며 고장을 위해 헌신했다.

장흥군청까지 연결된 2㎞ 도로의 개설을 위해 가문의 땅을 기부했고, 종가 뒷산에 편백숲을 조림하고, 해방 후에는 장흥중학교 건립과 마을 공간을 위해 재산을 기부했다.

2만주의 밤나무를 이웃과 함께 심는데 돈을 댔고, 이웃들이 채취해 가도록 공개하며 ‘더불어 잘살아야 한다’는 신조를 남겼다. 건강한 베롱나무 군락지도 조성했다. 모두가 쓸 수 있는 테니스장과 공동수영장을 만들었던 터도 남아 있다. 문화 선각자, 나눔 천사였던 것이다.

베롱나무 군락지
무계고택 정원

고만거종가는 충효를 가훈으로 계승하고 보존에 힘썼으며, 이제 명승 지정으로 일반에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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