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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을 문향(文鄕)으로 만든 기봉종가 형제들 [남도종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벽제에 말 갈아 임진에 배 건너, 천수원 돌아드니 송경은 고국이라.(중략) 감송정 돌아들어 대동강 바라보니, 십리파광과 만중연류는 항하에 어리었다.”

백광홍(1522~1556)은 평안도 평사에 부임하면서, 평안도와 황해도, 경기북부 등지의 삶과 정취,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그린 ‘관서별곡’을 지었다.

개성을 지나, 안개 사이로 버드나무 가지가 겹겹이 쌓인 모습과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평양 대동강 풍경을 비롯해 평안도 지방을 잘 묘사하면서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담았다. 그의 30년후배 정철은 ‘관동별곡’을 지을때 ‘관서별곡’을 벤치마킹했다.

기양사 [남도일보]
기봉집

수원백씨 중시조 이후 16세인 백광홍은 홍문관정자, 평안도 평사를 역임하며 기봉종가를 열었다. 가사문학 기행가사의 효시라고 일컫는 ‘관서별곡’과 기봉집을 남기고 기양사에 제향됐다.

백광홍의 동생 진사 백광훈(1537~1582)은 명나라 사신이 오자 노수신을 따라 백의로 제술관이 되어 시재와 명필로 사신을 감탄케 해 ‘백광선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당나라 시풍을 갖는 삼당시인이며, 이이·최립 등과 더불어 조선 중기 ‘8문장계’로 칭송 받는다. 그는 500여편의 시문을 묶은 옥봉집을 남기고 강진 서봉서원에 제향됐다. 청구영언에도 그의 시조가 전하고, 영화체라는 서체의 명필로 유명하다.

백광훈의 아들 백진남(1564~1618)은 유희춘의 외손녀 해남윤씨 윤은우와 혼인한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군량과 의병 모집을 담당하는 활약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백진사’라며 아꼈던 인물로 기록됐다.

백광홍의 사촌 백광성(1527~1593)은 화순의 학포당에서 양응정에게 공부하고 장흥 기산에서 후학양성에 전념했했다. 장흥의 자부심인 기산 8현은 백광홍·백광안·백광훈·백광성, 김윤·임분·임회·김회명이다.

이들의 장흥 후예들 이청준·한승원·송기숙·한강(한승원의 딸)은 ‘남도 최대의 문인촌’을 이어가고 있다.

백광홍의 관서별곡 시비

수원 백씨는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의 9세손 백천장이 고려 충선왕 때 원나라에서 우승상을 지내고 귀국 후 수성(수원)백에 봉해져 수원과 연을 맺는다.

중시조 12세 백장(공민왕 때 보문각 대제학)의 동생 백회가 보성현감을 지내고, 장흥 기산에 집성촌의 터를 잡았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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