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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또 다른 꼰대

기자는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97세대(1990년대 학번·1970년대생)’다.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역시 이른바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선배들이 얼마 안 됐지만 남아 있었다.

아마 새내기 때였을 것이다. 어쩌다 낀 술자리에서 대부분이 고학년이나 졸업생, 졸업을 눈앞에 둔 86세대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회상하니 대개 그들은 술자리에서 후배들이지만 처음 본 사람이 있음에도,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막걸리나 소주를 ‘거칠게’ 마셨다. 술을 마시던 그 선배들의 입에서는 ‘민중’, ‘파쇼’, ‘대오’ 등과 같은, 귀에 생경했던 단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새내기와 학번이 낮은 저학년들, 97세대에게 “세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친 자갈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술자리의 97세대 중 상당수는 선배들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혹자는 선배들과 논쟁을 벌였고, 또 다른 혹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97세대들은 제5공화국 시절 “반미”를 부르짖으며 데모했다는 86세대들의 ‘무용담’에 함께 흥분하다 술자리에서 하나둘 쓰러져 갔다.

생각하니 술자리의 97세대는 86세대 선배에게 수긍했다기보다는 ‘난 왜 세상을 바꾸는 데 참여하지 못했나’ 하는 부채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같은 잠재 의식 속에 그들과 동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 그 자리에서 계속 방관자로 존재했던 기억이 난다. 구태여 말을 걸기도, 이렇다 할 의견을 피력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대한 비참여는 죄악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삶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강요’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만 못 먹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야만 했다. 술잔을 빨리 비우지 않으면 한소리 하던 그 선배들 때문이었다. “세상이 문제니, 바꾸겠다”면서 ‘상명하복’이라는 인습을 여전히 따르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꼰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4·7 재·보궐선거에 나선 한 후보가 며칠 전 “20대는 역사에 대한 경험치가 낮다”고 했다고 한다. 20대가 40대 이상 중년에 비해 살아온 세월이 적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가 적다고 인생에 대한 경험과 고민까지 적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금의 2030세대는 중·고생 시절부터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입 경쟁을 위해 학교 시험 점수 1점마다 갈리는 내신 등급에 일희일비해야 했다. 그렇게 대학을 들어가도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해 학점에 신경 쓰면서 영어, 코딩 등 여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근 몇 년간 ‘조국 사태’,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등을 겪으며 세상은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집 하나 갖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너는 틀리다, 아니다, 모자라다”가 아니라 “너는 다를 수 있다. 같이 생각해 보자”가 아닐까. 86세대를 떠올리면서, 그 후보의 말을 되새기면서 한때 ‘X세대’로 불렸던 지금의 97세대가 어쩌면 ‘기존 구습’을 답습하면서 ‘또 다른 꼰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본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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