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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시간부자’돼 자연과 놀기

마침내 강원도 산골에도 봄이 왔다. 아내가 밭에서 한 바구니 가득 캔 달래와 냉이는 겨우내 잠들었던 미각을 깨워준다.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고로쇠 수액은 역시 ‘약물’이다. 어느새 밭 한 귀퉁이에서 푸릇푸릇 올라온 눈개승마와 산마늘도 입맛을 돋워준다. 뒤를 이어 쑥떡과 쑥국, 그리고 두릅·엄나무 순 등이 신선한 맛과 건강을 선물할 것이다. 겨우내 움츠린 심신에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는 치유의 향과 맛이다.

4월 초순에는 밭갈이를 하고 본격적인 한 해 농사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옥수수 씨앗과 씨감자 조각을 땅에 넣는다. 감자는 검정비닐로 이랑을 덮어주지만 옥수수는 씨앗을 그대로 땅에 파종한다.

이후 옥수수밭의 김매기는 맨발로 한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흙의 촉감을 즐기면서 자연스레 지압 효과를 얻고 지기 또한 한껏 충전한다.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힐링(healing)’을 얻는 것, 바로 치유농업이다.

최근 농장 텃새인 꿩이 다시 나타났다. 들고양이 때문에 그 숫자가 크게 줄어 한동안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잘생긴 장끼(수꿩) 한 마리가 “나, 여기 있소” 하며 까투리(암꿩)들을 유혹하며 다니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봄·여름엔 다시 새끼 꿩들과의 흥미진진한 만남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꿩은 필자 가족에겐 ‘자연의 친구’다. 아름다운 우정의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몇 해 전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다가 바로 발밑에서 알을 품고 있는 까투리를 밟을 뻔했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도 꿩은 필자를 믿었고, 필자는 꿩의 모성애에 감동했다. 이후 앙증맞은 새끼 꿩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자연의 친구’는 곧 ‘치유의 친구’다.

농부이자 귀농·귀촌 강사인 필자는 장거리 강의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환경이지만 저 멀리 경상도와 전라도 구석구석까지 훑고 다닌다. 직접 농촌 현장을 발로 뛰면서 생생한 농업·농촌, 귀농·귀촌 관련 콘텐츠를 확보하는 한편 지역별 명소 탐방도 빼놓지 않는다. 박한 강사료에 몸도 힘들지만 그래도 가는 곳마다 색다른 자연 속에서 늘 치유를 얻기에 즐겁게 임한다.

치열했던 인생 1막의 도시를 내려놓고 농촌에서 행복한 인생 2막을 갈망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은퇴 전후의 5060세대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실제 귀농·귀촌한 이후에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성공과 명예에 집착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소위 ‘억대 농부’ 등 성공한 귀농·귀촌인도 더러 만나봤다.

그중 상당수는 성공한 ‘돈부자’일지언정 행복한 ‘시간부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도시에서보다 더 바쁘게 산다는 게 그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

성공한 억대 농부라고 해도 시골 삶의 일상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치유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19 비대면 시대가 길어지고 있다. 5060세대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돈부자보다는 시간부자가 되어 자연과 함께 제대로 노시라”고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비로소 자연이 주는 평안과 느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니. 자연에서, 농사에서 치유를 통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진정한 자연인이자 자유인이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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