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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한 수 더 내다보는 중국인

“중국인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그들이 나보다 항상 한 수 내지 두 수를 더 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1988년 대기업에 입사해 30년 넘게 중국과 대만을 무대로 중화권 비즈니스를 해온 중국전문가 Y(59)씨의 말이다.

요즘 온라인용 중국 관련 기사를 일주일에 한 꼭지 정도 올리고 있다. ‘춘제 때 고향 안 가기’ ‘아버지·딸 합장묘 환약 성분’ ‘서유기 당승 모델은 현장법사가 아니다?’ 등 주로 정치·경제 등 큰 흐름에서 벗어난 생활뉴스다. 댓글을 보면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유 없이 싫어한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무시당할 정도인가’ 자문자답하면서 위 지인의 말을 끊임없이 되새겨본다. 그런데 책을 보면서 ‘한두 수를 더 내다보는 중국인’과 관련해 그 근원에 접근하는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중국의 과거 황권통치는 지방을 넘어 개인 영역까지 중앙에 흡수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그 영역은 현(縣)급을 넘지 못했다. 1949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인민공사 같은 조직을 통해 국가권력의 통제권을 향·진·촌, 나아가 농촌가정에까지 관철하고자 했다. 이는 중국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문혁이 끝나고 일부 시인이 문혁의 느낌을 한 글자로 표현했듯이 한 마디로 ‘망(網)이 지배하는 사회’인 셈이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이런 숨 막히는 구조를 넘어 그들만의 정신세계를 지켜냈을까.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겪었던 중국 현대사의 산증인 첸리췬(錢理群) 전 베이징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통제는 유효했고, 이미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역시 늘 은밀한 통제 속에서도 어떤 틈을 찾아낼 수 있었고, 중국인 특유의 생활적 지혜로 이를 최대한 확대해 이로부터 자신과 식구를 위한 생존공간을 획득했다. 이러한 생활 지혜는 당연히 마음이 쓰린 것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해주기도 한다. 이는 중국 민중의 정신구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인의 이런 유연한 저항은 ‘적벽부’를 쓴 송(宋)대의 소동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최근에 낸 ‘중국정치사상사’를 보면 중앙집권화된 국가 건설을 통해 지방, 그리고 개인의 영역을 끊임없이 중앙에 흡수하고자 했던 왕안석의 대척점에 소동파를 놓는다.

김 교수는 소동파가 1082년에 쓴 ‘적벽부’를 정치사상적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소동파 사유구조의 핵심은 주체와 사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관점의 문제이자 그러한 관점을 가능케 하는 주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소동파는 국가 주도의 현실정치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삶의 영역’이 있음을 설파하고, ‘왕안석’류의 획일적 국가팽창주의에 반대해 개인의 주체를 강조했다는 점과 삶의 영역을 국가가 관장하는 영역으로 전부 환원하지 않고자 했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지닌다고 본다.

필자는 ‘현실정치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삶의 영역’은 바로 중국인이 확보하고자 하는 그 ‘한두 수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들의 삶 속에 면련히 이어져 오는 무형의 ‘사유공간’이 그들의 오늘을 지탱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사회주의 정권의 망(網)이 강고하고 촘촘해도 그 정치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삶의 영역을 획득해내고야 마는 중국인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기보다는 더 깊이 연구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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