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상장 3년 후 차등의결권 소멸, 혁신기업 육성되겠나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쿠팡이 한국 대신 미국 증시를 선택한 배경에 차등의결권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입법이 속도를 낼 모양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뉴욕 증시 IPO(기업공개)로 일반 보통주의 29배 의결권을 가지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부여받아 상장 후에도 경영권 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차등의결권이지만 국내에서는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우려 때문에 몇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성패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상황에서 혁신형 기업들의 해외 엑소더스는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사안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주당 2∼10배 의결권을 가지는 복수의결권주 발행 허용을 골자로 한다. 그리고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반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하고 있다. 규제를 푼다고 했지만 상장, 비상장을 차별하는 등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특히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몰되는 조항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 차등의결권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벤처기업이 상장 후에도 경영권 우려 없이 활력 있는 성장 전략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상장 후 3년이 지나 차등의결권이 소멸된다면 제도의 효용성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률적 일몰 조항을 도입하기보다 좀 더 유연한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몰 기간 후에도 주주 과반수의 승인을 받으면 차등의결권 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쿠팡과 소프트뱅크의 협력관계를 보면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면 벤처에 투자하는 대기업의 경영권 확보를 어렵게 해 벤처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구조 구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의 부작용만 강조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만들거나 획일적 잣대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해외로 나가는 기업을 돌려세울 수 없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점이 깊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제도의 남용이 걱정된다면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에 대해서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그중에서도 특히 지배구조, 즉 투명경영 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무능한 경영자가 차등의결권을 남용하거나 악용한다면 투자자들은 결국 그 기업을 버린다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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