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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절 훈련이라며 도복 끈으로 목 졸라”…체육계 만연한 폭력 원인은?[촉!]
폭력 앞에 꺾인 유도선수의 꿈
성과지상주의, 폭력에 정당성 부여해
‘학연·지연에 엮인 군림 구조’도 문제
[망고]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운동부는 맞아야 하고, 오히려 잘 맞는 후배, 잘 때리는 선배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실상은 폭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경기도 외곽에서 스포츠재활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37 )씨는 요즘도 가끔씩 왼쪽 팔꿈치가 저려 온다. 유도 선수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운동부 선배에게 맞아 생긴 후유증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0년 겨울방학에 시작한 합숙 훈련,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선배들은 부족한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얼차려를 주기 일쑤였다. 기절하는 것도 훈련이라며 도복 띠로 목을 감아 기절을 시키기도 했다.

온갖 규율을 만들어 이를 지키지 못하면 붕대를 감은 목검으로 허벅지 쪽을 내려치기도 했다. 이 씨의 팔꿈치도 이를 막다가 다친 것이다.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지 길이마저 통제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한겨울에도 냉수로 무거운 도복을 몇 벌이고 직접 빨아야 했다.

그럼에도 코치, 감독 등 지도자들에게 해결을 요청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폭력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시합에 지는 날이면, 구타와 함께 새벽까지 훈련을 시켰다. 코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동기는 손바닥으로 뺨을 맞기도 했다.

물론 이런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다. 소위 엘리트로 선망받던 선배였다. 각종 대회에서 상(賞)을 휩쓸고 다녔던 그 선배만큼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 씨는 “이런 고통을 이겨 내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지 않았다”며 “대학을 가고 실업팀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라는 소문에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체육계에서 벌어지는 만연한 ‘폭력’이 또 다시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오랜 시간 체육 분야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잇달아 드러난 배구계의 ‘학교폭력’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폭력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체육계의 폭력 사태를 대변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전국 5274개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4.7%(8440명)가 선배나 지도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많은 선수들이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조사에 따르면 폭력을 당한 학생 선수 중 79.6%는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하지 못했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24.5%로 가장 많았다.

체육계의 성과 지상주의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학연·지연으로 뭉친 폐쇄성이 폭력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안양옥 서울교대 체육교육과 교수(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스포츠의 기본 정신이 변질돼 폭력의 정당성을 만들었다”며 “학연과 지연이 중요한 한국 체육계에서 지도자와 선배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지면서 그 폐쇄성이 폭력을 더욱 키운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제도적 규제 개선 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만연한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교육과 문화 조성을 통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어린 시절부터 기본 소양이 갖춰져 있어야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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