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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별금품 관행 끊은 청렴의 상징, 순천 팔마비 보물 된다
개경 새 임지로 발령난 최석 전 부사의 청렴
고려말 건립, 일본이 파괴했으나 이수광 재건
갑사 대웅전, 대곡사 범종루도 보물 지정예고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순천 팔마비는 1281년(충렬왕 7) 이후에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건립한 비석이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승평부에서는 수령이 교체되면 이임하는 부사에게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최석은 교통편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증한 말을 타고 새 근무지인 개성(비서랑)에 도착한 후 자신이 기증받은 말과 자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고,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고 하였다.

비석은 고려말 처음 건립된 이후 1300년대 초반 쓰러졌으나 다시 세워졌다. 이후 정유년(1597년, 선조 30)의 일본의 침략으로 완전하게 훼손됐다. 간악한 일본은 오래전 부터 별 걸 다 말살시키려 했던 것이다.

1616년 지봉유설로 유명한 지봉 이수광이 순천부사로 부임해오면서 1617년 다시 건립돼 이후 한번도 훼손되지 않은채 보존됐다.

청렴의 상징 팔마비

이수광이 중건한 팔마비의 八馬碑 세 글자는 진사 원진해(元振海)의 글씨이고, 뒷면에 기록된 음기(陰記)는 이수광이 짓고 동지사(同知事)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비석은 상면이 둥글게 처리됐다. 비석의 높이는 약 160cm, 폭은 약 76cm, 두께는 약 16.5cm 이다. ‘八馬碑(팔마비)’ 석 자가 돋을새김이라 이채롭다. 글자 한 자의 지름은 약 48cm로 상당히 크다.

순천 팔마비는 주인공 최석을 청렴한 지방관의 표상으로 삼아 현재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26일 순천 팔마비, 공주 갑사 대웅전, 의성 대곡사 범종루 등 지방유형문화재 3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갑사 창건의 가장 오래된 연원은 6세기 신라 진흥왕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갑사가 화엄십찰의 하나로 삼국유사의 내용에서도 확인돼, 적어도 9세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갑사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 중 하나로, 내부 ‘갑사소조삼세불(보물 제2076호)’이 1617년에 만들어졌고, 1659년에 갑사사적비가 세워지는 과정을 고려하면, 건립연대는 17세기초로 추정된다.

최초 창건은 1500년전으로 추정되는 갑사

이 건축물은 전환기 건축의 특징을 지닌다. 정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집의 구성인데, 정면이 5칸이면서 맞배지붕을 한 사례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정면과 배면 공포의 형식이 동일하고, 기둥 간격이 정면 중앙 3칸이 12척, 측면과 나머지 주칸은 8척으로 나타나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간결하게 배치하고 있다.

목구조에서 휘어진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하여 사용한 것은 경제적 상황과도 연관되어 이 시대에 새로 등장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에 지어진 다포계 맞배집의 전형적인 형식을 공유하면서 조선 후기의 건축적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다포는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은 건축양식으로 복잡한 듯 보이지만 화려한 느낌도 준다.

의성은 ‘컬링’의 유명세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하나둘 감춰진 유산과 보석들을 꺼내놓고 있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의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병화로 전소되어 17세기 중·후반인 1644년에서 1683년 사이에 중창되었음을 알수 있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

범종루는 정면 3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 건물이다. 현존하는 누각 건축 중 17세기 전반의 것은 대부분 3칸 평면을 가지고 있고, 이후 누각 평면이 3칸에서 5칸, 7칸으로 점차 확장되어 가는 경향을 살펴볼 때 범종루는 기존에 남아 있는 누각 건축 중에서도 이른 시기인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각의 하부 기둥은 자연곡선이 살아있는 기둥으로 임란 이후 목재수급의 어려움, 조선후기 자연주의 사상과 맞물려 살림집과 사찰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대들보는 대개 단일부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나 범종루는 같은 크기의 부재가 2단으로 걸려 있다. 이처럼 2단의 보가 쓰이는 형식은 보기 드문 사례이며 상부 보 부재가 대들보 역할을 하고, 하부 보부재는 보받침 부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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