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2030, 4명 중 1명이 비혼을 선택하는 시대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최근 김지현(25) 씨와 장정우(26) 씨처럼 ‘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비혼을 선택한 2030들은 4명 중 1명에 이르렀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 12월 20~30대 미혼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비혼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24.8%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비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남,여 응답의 결은 조금 달랐다.
20대 남성들은 ‘경제적 요인’, ‘개인의 행복’ 등을 비혼 사유로 꼽았다면 여성은 ‘가부장제로부터의 탈피’를 들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25세 남자 김민중(가명) 씨는 “나 혼자 지내기도 벅찬 순간에 비혼을 결심한다”며 “여유롭게 살지 않는 이상 맞벌이를 해야 할텐데 양육과 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지현 씨는 “결혼을 하면 ‘딸같은 며느리’ 등 가부장제에 의한 사회적 역할이 덧씌워지는 게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1년 차 직장인 홍모(26·여)씨 역시 “똑같이 일하는데 왠지 육아 휴직은 내가 내야할 것 같은 사회적 압박이 싫다”며 “사회생활을 해보니 이런 고정관념을 깨줄 사람은 정말 드물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020년 인구보건위원회에 따르면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남자는 ‘현실적으로 결혼을 위한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어서(집 마련, 재정적 부분 등)’가 51.1%, ‘혼자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되어서’ 29.8% 순이었다. 반면 여자는 ‘혼자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어서’ 25.3%, ‘가부장제 및 양성불평등 등의 문화 때문에’ 24.7% 순으로 응답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출생자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 시대에 돌입했다. 저출생 문제의 1차적 원인은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까지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결혼 제도 밖에 있기를 원하는 이들이 아이를 낳아 키울 권리와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방송인 사유리씨가 쏘아올린 ‘자발적’ 비혼모 논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홍씨는 “결혼제도와 출생을 분리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결혼=출생이라고 여기는 공식을 아직까지 붙들고 있기 때문에 10여년이 지나도록 ‘저출산 대책’이 실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씨는 “나도 남들처럼 좋은 유전자를 받아서 나와 닮은 딸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꾼다”며 “재생산에 대한 욕구가 당연히 있지만 우리 사회는 비혼모, 비혼부가 될 권리조차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장씨 역시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씨는 “능력이 있다면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자라난 아이를 사회가 ‘남들과 다른 슬픈 출생의 비밀을 가졌다’고 여기지 않도록 제도적인 뒷받침과 인식 개선도 뒤따라야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청년들 사이에서는 ‘결혼’ 대신 보다 느슨하면서도 자유를 추구하는 ‘동거’제도를 선호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2020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7%로 2012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약 3명중 1명 꼴로 늘었다.
비혼을 선택한 2030 청년들 역시 새로운 동거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 목소리를 같이 했다. 프랑스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도 부부에 준하는 사회적 보장을 받는 시민연대계약(PACS),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도입한 법적 동거 제도(Cohabitation légale)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9년 도입된 시민연대계약은 동거의 유연성과 결혼의 보장성을 결합한 제도로 계약을 맺은 커플끼리 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김씨는 “결혼은 하지 않지만 동거를 하거나 다른 형태의 가정을 가질 생각은 있다”며 “혹여나 이혼으로 인해 재산 분할 등 복잡한 법적 절차를 밟는 리스크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씨도 “결혼의 대체재로서 ‘동거’가 적극 권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 단위의 가구 구성이 늘어나는 것은 국가적인 이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성별, 구성원, 나이를 초월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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