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헬멧 벗고 걸어와라” 갑질에…‘아파트 블랙리스트’ 등장 [IT선빵!]
보안, 심리적 불편감 등을 이유로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배달업 종사자들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초고급 부자아파트 오토바이 내려서 걸어서 배달해라’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게재된 영상 갈무리. [유튜브]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삼성중앙역 인근 아파트는 피하시길’ ‘한티역 인근, 걸어가야 하는 아파트 표시해뒀어요’.

택배·배달기사의 아파트단지 진입을 꺼리는 일부 주민의 ‘갑질’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가운데, 배달업 종사자들도 ‘아파트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 반격에 나섰다. 갑질이 예상되는 단지에서 들어온 콜은 접수를 거부하자는 움직임이다. 배달 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게 되면 결국 플랫폼이나 식당에선 고객에게 부과할 배달료를 높일 수밖에 없다.

22일 배달업 종사자들이 이용하는 한 커뮤니티에는 ‘천룡인 아파트 리스트, 외우고 다니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오늘 서울 강남 지역에 원정 가보려고 하는데, 천룡인 아파트 목록 프린트해서 갈 예정”이라며 “콜 들어올 때마다 계기판 앞에 붙여놓은 리스트 확인하면서 수락할 것”이라고 적었다. 천룡인이란 일본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주요 악당 중 하나로, 만화 속 세계관에서 창조주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으로 설정돼 있다. 모든 규범 위에 군림하며, 나머지 인간을 깔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헤럴드경제DB]

글쓴이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아파트 주민 갑질’을 우려한 것이다. 일부 아파트단지는 택배기사나 배달라이더가 단지 내에서 이륜차, 화물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주민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해 정문에 운송 수단을 세워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정문 이후부터의 배달을 책임지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라면 기사가 직접 수레 등을 이용해 도보로 배달해야 한다. 보안을 우려해 신분증을 경비실에 맡기라는 요구도 있다.

이 밖에 배달·배송 과정에서 엘리베이터를 오래 세워둔다는 이유로, 혹은 엘리베이터에 음식물 냄새가 밴다는 이유로 화물전용 승강기나 계단만 이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까만 헬멧이 공포감을 조성하다는 지적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주민의 요구는 기사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업무를 지연시키고 수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갑질로 지적받고 있다. 서울 강남 모 아파트는 대단지 아파트인데도 정문 도보 배달을 요구해, 왕복이 20분 가까이 소요됐다는 후기도 있다.

아파트 블랙리스트를 공유해 달라는 한 배달업 종사자의 게시글에는 한 시간여 만에 수십개 댓글이 달렸다. 특정 지하철역을 언급하며 인근 아파트단지는 웬만해선 피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서부터, 스마트폰에서 지도를 캡처해 정문에서부터 도보로 배달해야 하는 아파트를 표시해둔 이미지까지 공유됐다. 이 밖에도 커뮤니티 회원들은 “XXX아파트 근처, XX구청 근처는 거르시면 된다” “청담XX도 유명하다” 등의 조언을 남겼다. 주민 갑질을 지적하며 단체 대응을 제안하는 또 다른 게시글에는 20여개 아파트단지 주소까지 상세하게 적은 댓글이 달렸다.

정문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걸어서 배달을 해야 한다는 등의 ‘갑질’이 일어나고 있는 아파트단지의 목록이 업계 커뮤니티 등에 공유되고 있다. 사진은 지도 애플리케이션 위에 해당 단지를 표시한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정문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걸어서 배달을 해야 한다는 등의 ‘갑질’이 일어나고 있는 아파트단지 목록이 업계 커뮤니티 등에 공유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처럼 배달라이더들이 단체로 배달 거부에 나선다면 해당 아파트 주민로선 배달료를 더 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실제 배달 대행업체 '생각대로'는 최근 배달차량의 출입을 막은 성동구의 신축 아파트에서 접수된 배달 주문에 대해 수수료를 2000원 인상했다. 그런데도 배달업 종사자 대부분은 2000원 수준의 인상폭은 유인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다. 폭설 등으로 도로 사정이 악화되거나 배달이 몰리는 연휴 기간, 주문량에 비해 라이더 수가 부족해지면 플랫폼은 평소 건당 4000원 안팎인 수수료를 1만원 이상으로 올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입주민 간 합의를 거쳐 배달라이더와 주민 간 중간점을 모색한 ‘화이트리스트’ 사례도 공유되고 있다. 서울 강남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가 대표적이다. 해당 아파트 역시 기존에는 배달기사를 향한 갑질로 종사자 사이에서 유명했으나 기피 아파트로 찍히면서 배달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변화를 모색했다. 최근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이 1층에서 직접 음식을 받아가는 시스템을 정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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