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그게 마지막 공연이 될지 몰랐다 [코로나는 처음이라]
[코로나는 처음이라] 누구나 생애 첫 순간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첫 아이를 낳았고, 누군가는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야심차게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들도 있습니다. 거리두기가 미덕이었던 2020년에 인생의 ‘처음’을 겪은 이들은 작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또 새해에 기대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전합니다.

〈2〉 생애 첫 코로나, 무대를 잃었다

에피소드 #1 : 코로나가 멈춘 나의 데뷔무대

오차연(24) 뮤지컬 배우의 이야기

뮤지컬 ‘맘마미아’의 15분짜리 커튼콜은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본공연(1~2막)을 마친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이어서 앙상블 배우들이 어우러져 ‘맘마미아’를 합창하면, 어느새 주연 배우들도 합세해 ‘댄싱퀸’, ‘워털루’ 2곡을 더 불렀다. 아바의 히트곡이 이어지자, 객석의 반응은 절정에 올랐다. 누군가는 가사를 따라 외치고 박수를 쳤다.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사람도 보였다. 거기에 엄마와 아빠도 있었다. 배우들 틈에서 군무를 맞추는 내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첫 공연을 본 엄마가 후기를 들려줬다. “너 정말 반짝반짝 빛나더라.”

오차연 씨가 2018년 학교 공연예술학과 정기공연으로 준비한 '넥스트 투 노멀'에서 연기하는 모습. [오차연 씨 제공]

마스크를 쓴 관객들이 보였다

맘마미아는 공연예술학과 4학년인 차연 씨의 뮤지컬 데뷔 무대다. 20명 앙상블의 막내였다. 첫 공연은 2019년 7월 14일 LG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여기서 두 달 꼬박 80번 넘게 공연했다. 이 사이 맘마미아의 국내 누적관객은 200만명을 돌파했다. 뮤지컬은 이듬해 7월까지 1년 간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곧바로 전국투어에 돌입했다. 주말마다 목포, 강릉, 수원, 인천, 광주, 천안, 부산, 대전을 찾았다. 그해 12월엔 대구에서 한 달 내내 머무르며 공연을 했다.

2020년 1월 10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객석엔 빈 자리 찾기 힘들었는데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하얀 마스크를 쓴 관객들이 보였다. 새 전염병이 꽤 심각한가 보네. 앞으로 공연은 어찌되려나’하고 차연 씨는 생각했다.

꼭 한 달 뒤. 올 것이 왔다. 청주에서의 공연 직전 제작사로부터 “코로나19 때문에 지방 공연은 취소될 것 같다”는 얘길 들었다. 이미 김해와 창원, 고양, 서울(신림 디큐브시티) 공연이 확정된 때였다. 배우들은 술렁였다. “워낙 정서가 밝은 작품이다보니 다들 무대에선 애써 웃으며 연기했어요. 그래도 속은 울적했죠.”

청주 공연을 마친 배우들을 태운 버스가 서울에 닿았다. 차연 씨는 “건강 관리 잘 하고 디큐브에서 보자”고 언니 오빠들과 인사했다. 공연 날짜가 자꾸 밀렸다. 결국 디큐브에서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심해지자 기획사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3월에 배우와 스태프가 모였다. 기획사 대표님은 “배우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취소된 공연의 출연료도 일부 지급했다. 당장 수입이 끊긴 처지에 큰 힘이 됐다.

오차연 씨가 '맘마미아' 프로그램북을 펼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앙상블 출연진을 소개하는 자리 실린 차연 씨의 사진엔 '데뷔'라고 새겨졌다. [사진=신보경 PD]

도둑맞은 것 같은 2020년

처음엔 ‘나는 공연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괴롭혔다. 화려한 무대의상과 눈부신 조명, 배우들의 숨소리와 환호성이 뒤섞인 무대를 벗어난 일상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집에만 있으려니 외딴섬에 남겨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프=권해원 디자이너]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순 없었다. 차연 씨는 작년 3월부터 집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점심에 가게로 나가 4시간쯤 일한다. 예술대학 입시생을 과외를 맡아봤고, 보컬 선생님을 찾아 트레이닝도 받았다. 하루 확진자가 1000명으로 오르기 전엔 오디션 공고가 종종 떴다. 하지만 공연이 된다는 기약이 없다. 친구는 어느 뮤지컬의 1차 오디션은 통과했는데, 2차가 차일피일 늦춰지다가 공연 자체가 무산됐다. ‘내가 준비한다고 해도 공연이 올라갈까’하는 두려움이 배우들에게 배어있다.

깊은 정이 든 앙상블 배우들끼리 웃고 떠들던 단체 대화방은 아직 살아있다. 채팅창에서 서로 생일을 챙기고 안부도 묻는다. 뮤지컬 업계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자 설 무대가 크게 줄었다. 어떤 오빠는 일용직 일거리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공장에서 짧게 일하고 있단 소식도 들었다. 무대 경력이 많은 몇몇 언니들은 다른 공연에 올랐다고 했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때 본 뮤지컬 ‘위키드’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록마녀 엘파바가 와이어에 의지한 채 하늘을 날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고등학생 차연은 ‘저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꿈은 여전히 간절하다. 작년엔 데뷔 무대를 마치 도둑맞은 느낌었지만,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인터뷰를 마치고〉 대전에서의 공연을 하면서 바이러스성 장염에 시달렸다. 매주 지방을 돌며 강행군을 펼치다 보니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까닭이었다. 이틀 연속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무대에 올랐다. 이럴 때를 대비해 대체 배우(스윙)가 있지만, 차연 씨는 이를 악물고 자기 몫을 소화했다. 결국 공연을 마치곤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때 선배 배우들이 가족처럼 챙겨줬다. 그들과 다시 노래하고 군무를 맞출 날을 고대하고 있다.

에피소드 #2: 제대하니 연극 무대가 사라졌다
2017년 연극 ‘손님들’에서 소년을 연기한 김하람 연극배우 [사진=프로젝트 내친김에]

김하람 연극배우(26)의 이야기

첫 연극 데뷔작으로 부모를 살해한 소년을 연기했다. 고교생 이모 군의 존속살해 사건을 재해석한 연극 ‘손님들’의 주연이었다. 멍울진 아픔을 안고 희망을 좇는 소년을 상상하며 배역에 몰입했다. 무대에서 땀을 쏟고도 소년을 씻어내지 못한 채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발끝까지 체력이 고갈됐다. 20여 년간 연극배우를 하며 수시로 조종사, 성직자 등으로 변해 온화해지기도 섬뜩해지기도 했던 아버지는 “집에 올 땐 역할을 털고 오라”고 말했다. 2017년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던 22살 때였다.

연극을 마치고 2019년 군대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체력왕’, 부대에서 ‘철통독서경영대회’ 상장을 휩쓸 정도로 순탄하게 적응했지만, 그해 겨울 청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11월 사격 훈련 때 쌓여있던 탄약을 소진하기 위해 한 번에 200여 발을 쐈다. 귀마개를 착용했지만 총알이 총구를 뚫고 나갈 때마다 ‘삐’하는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자고 일어나도 이명(耳鳴)이 없어지지 않았다.

군의관은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곡괭이질 같은 높은 음역대의 소리가 반복되면 고막이 욱신거렸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2명 중 1명은 완치된다고 했다. 50%의 확률에 들지 못했다. 가늘고 날카로운 쇳소리를 배경음악처럼 깔고 살게 됐다. 해가 넘어가면서 전역을 기다렸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먼저 왔다. 외출과 휴가가 줄줄이 취소됐다. 유격과 혹한기 훈련도 밀렸다.

2017년 연극 ‘손님들’에서 소년을 연기한 김하람(26) 연극배우 [사진=프로젝트 내친김에]

2020년 7월에 조기 전역했다. 그간 연기됐던 휴가를 쓰고 부대 복귀 없이 제대했다. 그해 9월 낭독 공연에 설 계획이었으나 11월로 연기되더니 급기야 취소됐다. 무대 스피커가 손상된 청력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나마 운이 좋아 한국소극장협회 방역안전지킴이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르지 못할 무대를 볼 때면 지독하게 배역에 빠져들었던 옛날이 떠올랐다.

모든 기회를 박탈당한 건 아니었다. 2년 전 연극 손님들의 관객이었던 독립영화 감독이 대본을 건네며 주연을 제안했다. 피아노 치며 축가를 부르는 회사원 역할이었다. 평생 음치이자 박치로 살아온 것을 통탄하며 피아노 전공자인 지인의 연습실에 틀어박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부터 배웠다. 체중도 10㎏ 감량했다. 제법 호리호리했던 모습을 기억했던 감독은 근육을 한껏 부풀린 채 전역한 포병을 보자 적잖이 당황했다. 매일 중랑천을 내리 달리며 몸의 부피를 줄였다.

작년 11월 영화 촬영 시작과 함께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다.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이 방역 문제로 수정됐다. 학생들로 꽉 찬 버스에서 여자 주인공에게 바짝 기댄 남자 주인공이 어쩔 줄 몰라 식은땀을 흘리는 장면이었지만, 모든 단역 배우를 빼는 것으로 변경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어린 배우들을 좁은 공간에 방치하는 것은 어쩐지 반(反)인륜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촬영해야 하는 장면도 코로나로 인해 허가가 나지 않아 삭제됐다.

최근 헤럴드경제 본사에서 만난 김하람(26) 연극배우. 지난해 독립영화에 첫 출연했다. [사진=박로명 기자]

한 달간 진행된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그 사이 상앗빛 건반을 손가락으로 활주할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늘었다. 익숙했던 연극 발성도 영화 주인공에 맞는 나긋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2020년 12월 5일 마지막 촬영을 마친 날 집까지 걸어갔다. 짙은 우물 같은 밤하늘을 보자 “드디어 끝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처럼 영화까지 취소될 수 있다는 불안이 천천히 씻겨 내려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피아노를 가르쳐준 지인에게 손 편지를 썼다. 군대를 전역하고 마음껏 보고, 놀고, 만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섬과 섬을 표류하며 지평선이 끊긴 대서양을 떠돈 것만 같다. 숱한 단절에도 전역 후 주어진 삶은 덤 같았다. 새로운 기회와 인연으로 풍족함을 누렸다. 올해는 사람들의 섬을 찾아가고 싶다. 연극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 영화도 영화관에서 공개됐으면 좋겠다. 계속 연기할 수 있는 것. 올해 바라는 것은 그뿐이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인터뷰를 마치고〉 하람 씨는 작년에 취소됐던 낭독 공연이 곧 재개되길 기대하고 있다. 독립영화는 편집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당분간 베테랑 연극배우인 아버지 김정호 씨의 매니저 역할도 병행할 계획이다. 오는 3월 제주도에서 예정된 아버지의 촬영을 보조하기 위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목표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