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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덤 지지 동력화…K팝, 지구촌 정치·사회 ‘이슈 스피커’로 [헤럴드뷰]
변화를 위해 행동하고 발언하는 스타들
‘사회적 책임’ 말하자 ‘선한 영향력’ 확대
Z세대 관심분야 기후변화·인종차별 화두
정치·사회 시위현장 ‘팬덤의 입’ 활약도
영향력 체감한 사회단체 등 협업 제안
전문가, “사회운동 대변 장르 자리매김”

“기후변화는 범 지구적 과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블랙핑크 제니)

파리기후변화협정 5주년을 앞둔 지난달, K팝 그룹 블랙핑크의 공식 유튜브 채널엔 특별한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블링크(블랙핑크 팬클럽)들 주목! 기후변화에 대해 함께 배워 볼 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블랙핑크는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상은 14일 기준 210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블랙핑크의 영상은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제작됐다. 주한영국대사관은 블랙핑크에게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 블랙핑크는 유튜브 구독자수(5560만명)로 전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강력한 영향력으로 글로벌 팬덤을 이끄는 블랙핑크를 통해 기후변화 이슈에 관심이 높은 Z세대(1995년 이후 출생)를 공략하려는 전략이다. K팝 그룹이 공식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 금기와 침묵 깬 K팝…사회적 책임을 말하다=K팝 아이돌이 금기를 깨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 인종차별 반대, 반부패 등 다양한 현안을 공유하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태생이 대다수를 이루는 K팝 3세대에 접어들며 나타난 변화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K팝의 주요 팬층인 Z세대가 인종, 젠더를 포함한 양성 이슈, 환경 문제 등의 사안에 워낙에 민감하다”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자신들의 관심사에 발언해주길 바라는 팬들의 기호와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고 수용하려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고 분석했다.

정치·사회 이슈에 침묵을 요구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전에도 첨예한 정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션은 있었으나, 아이돌은 아니었다”라며 “해외 팝스타들에겐 거리낌 없고 제한이 없는 영역이지만 정치, 사회 발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국내 정서에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고 짚었다.

최근의 변화는 K팝의 영향력이 글로벌 무대에서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나타났다.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이라는 국한된 지역의 음악으로 생각됐던 K팝은 해외 시장을 공략한 이후 ‘국제적 음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정 평론가는 “K팝이 성장하자 해외 팬덤은 국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스타들임에도 다양한 안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형성됐다. 그러면서 인종 등 여러 안건에 대해서도 발언해달라는 요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일련의 변화는 K팝의 주요 팬덤과 이를 이끄는 주축인 가수들, 즉 Z세대인 이들이 공통으로 인식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국적, 인종, 성(性)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존중의 성향’, 역사상 가장 ‘공정한 세대’로 불릴 만큼 ‘불공정, 불합리, 차별’에 민감한 ‘연대 의식’이 더해졌다.

▶ 기후변화·인종차별…‘선한 영향력’의 중심에 서다 =K팝 스타들이 가장 편하게 접근한 이슈는 기후변화다. 기후 문제는 전 세계 140여개국에서 수백만 명의 MZ(밀레니얼+Z)세대가 관심을 가지는 보편적 주제로, 이들은 꾸준히 ‘그린 뉴딜’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20년 팬데믹을 겪으며 환경과 생물권 멸종 위기 의식도 높아진 만큼 K팝 아이돌도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달의소녀 멤버 츄는 최근 다이아TV와 함께 ‘지구를 지켜츄’라는 채널을 개설, 환경 콘텐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콘텐츠를 공식적으로 제작한 K팝 아이돌은 츄가 처음이다. 츄는 “저는 작은 존재이지만 작게나마 환경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처음 공개된 ‘지구를 지켜츄’에선 ‘플라스틱 프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츄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해 환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첫 콘텐츠 공개 이후 구독자와 주회수가 늘어나 내부에서도 놀라고 있다”며 “콘텐츠를 시작하며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고 했다.

환경단체에서도 K팝 아이돌이 목소리를 낼 때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타의 행동이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팬덤으로 이어졌다.

조윤환서울환경연합 후원사업 팀장은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리더 RM이 환경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자 스타를 사랑하는 팬들이 움직였다”며 “2019년부터 RM의 팬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서울 한강공원에서 조성한 ‘알엠 숲’ 1호 이후 서울환경연합에는 다른 팬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설명이다. 현재까지 방탄소년단 정국, 빅톤 등 K팝 아이돌 7인의 이름으로 숲이 조성됐다.

조 팀장은 “환경 문제는 과거엔 올드한 과제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힙한 문화로 자리잡으며 MZ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라며 “추진 중인 활동에도 예전엔 40~50대의 참여가 많았지만, 지금은 20~30대는 물론 10대까지 연령대가 내려갔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스타들이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환경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몬스타엑스는 국제반부패회의 홍보대사로 선정, 전 세계 ‘각국의 부패 척결과 청렴 사회 구현’에 앞장섰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인종차별 이슈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방탄소년단은 공식 트위터에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고, 흑인 인권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BLM·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측에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기부했다. K팝 팬덤에서 BLM 관련 공개 지지 요구가 나오면서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NCT, 레드벨벳, 몬스타엑스, 에이티즈, 씨엘이 인종차별 반대 선언을 했다. 정 평론가는 “해외 팬들과 호흡하게 된 이후 그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봤다.

▶ 다양성 정치의 상징…팬덤의 입이 된 K팝=K팝은 스타들의 목소리에만 그치지 않고, 팬덤의 입도 대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K팝은 전 세계 팬들의 ‘의사표현’ 수단으로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태국의 반정부 시위에선 블랙핑크의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가 울려 퍼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에 “태국 젊은이들이 정부에 맞서는 수단으로 K팝을 들였다”고 했다. 아르메니아에선 어린 소녀들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며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소녀들은 놀랍게도 한글로 적은 팻말을 들고 비극의 한복판으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현장에서 있었던 K팝 팬들의 ‘노쇼’ 시위도 전 세계가 주목한 사건이었다.

‘비정치적’ 노선을 요구받아온 K팝 가수들의 음악이 정치 시위와 만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K팝의 태생과 달라진 위상이 이러한 현상의 요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규탁 교수는 “K팝은 비영어권, 비서구권 음악으로 글로벌 팝 시장에선 비주류 콘텐츠였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비주류라는 근본적 속성으로 소수자들과 연관되며 지지를 받아왔다”라며 “백인보다는 흑인, 히스패닉과 이민자, 기성 세대보다는 젊은 세대, 메인 스트림보다는 마이너리티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재 평론가도 “K팝은 라틴 음악처럼 대안의 성격, 반문화 성격을 가지고 성장했다”며 “완전히 메인 스트림이 아닌 소수자적인 성격이 있는 계층에서 소비를 해온 것이 이러한 결과로 나타났다”고 봤다.

K팝이 음악으로서 ‘정치색’을 담거나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 대중에게 K팝은 다양성 정치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문화와 콘텐츠는 수용자의 입장과 해석에 따라 활용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K팝은 특정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젊은 세대, 소수자가 다수인 주요 팬층의 영향으로 다양한 목소리로 활용”(이규탁 교수, 정민재 평론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K팝이 더욱 적극적으로 각종 현안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K팝은 “여러 사회운동을 대변하는 유일한 글로벌 음악 장르”(이규탁 교수)로 자리매김하리라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 교수는 “K팝의 주요 팬덤인 Z세대는 차별하지 않는 올바름과 정치적 정의로움, 환경과 인종 등의 인류 보편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라며 “팬덤의 목소리와 함께 Z세대 당사자인 가수의 자율성을 높여 K팝이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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