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록 ‘써니’들에게 갈채를

72년생 허은아, 내 인생과 같은 두 편의 영화가 있다. 한 편은 10년 전 개봉한 영화 ‘써니’고, 나머지 한 편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삼진그룹)이다. ‘써니’는 1980년대 후반 학창시절을 보낸 추억과 향수를, 그리고 ‘삼진그룹’은 90년대 중반 전문대를 졸업해 항공승무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치열함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고등학생 딸과 ‘삼진그룹’을 봤다. 이 영화를 통해 여자로서 엄마가 살아온 시대를 이해받기를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딸은 과거 실업고 출신 여사원들이 겪은 성차별과 학력차별에 대해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왜 여자만 커피를 타는지, 왜 고졸 출신 사원만 유니폼을 입는지, 왜 임신을 하면 회사를 나가야 하는지를 딸은 이해하지 못했다. 딸이 그런 차별을 생소하게 생각할 정도로 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그 차별을 당연히 여기며 묵묵히 견뎌온 내 삶에 대한 측은한 감정이 함께 들었다. 내 80년대 학창시절은 그랬다. 정치적으로는 마지막 군부독재의 그늘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3저 호황의 황금기였고 학교는 교복자율화로 개성을 발산할 수 있었다. 미래는 ‘써니’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써니’들이 맞은 90년대 사회생활은 달랐다. 산업화 시대의 임원들과 386세대 선배들이 만든 경직된 기업문화 가운데 상고나 전문대 출신 여직원들은 ‘삼진그룹’의 그들처럼 성차별과 학력차별의 대상일 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 시대의 차별받는 꼴찌들이었다.

영화 ‘삼진그룹’의 꼴찌들은 차별에 순응하거나 신세한탄에 머물지 않았다. 공장 폐수 유출 사건에 대한 공분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회사를 향한 애정과 주체적 삶에 대한 의지로 부정과 싸우고 부조리를 파헤쳤다. 극 중 주인공 ‘자영’이 각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회사의 비리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방문한 서울대에서 학생들과 다른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주눅이 들 때 마주친 대자보를 통해서다.

“부조리한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행동해야 합니다.”

이 대자보의 제목은 ‘꼴찌들에게 보내는 갈채’였다. 1977년에 발표된 박완서 작가의 수필 제목을 감독이 인용한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삼진그룹’의 그때와 같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또 다른 꼴찌들이 차별 가운데 놓여있다. 누구는 순응하고, 누구는 극복할 것이다. 나 역시 차별을 극복한 꼴찌임을 자처하며 국회에 들어왔지만 들어와 보니 또 꼴찌다. 비례대표 순번도 맨 마지막에 당선된 꼴찌였고, 여의도에 아직도 만연한 지연주의와 학연주의, 그리고 엘리트주의 가운데에서도 꼴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극복하는 꼴찌가 되고 싶다. 세대전쟁에서 차별받는 꼴찌청년들과, 남성중심 사회에서 차별받는 꼴찌여성들, 그리고 대기업에 차별받는 꼴찌창업가들과, 금수저들에게 차별받는 꼴찌서민 편에 서는 꼴찌정치를 하고 싶다. 세상은 꼴찌들이 차별을 극복해 나갈 때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한 꼴찌들에게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의 마지막 명대사를 남겨주고 싶다. “위 윈, 위아 그레이트.”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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