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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크를 쓴 채 첫 아이를 낳았다 [코로나는 처음이라]

[코로나는 처음이라] 누구나 생애 첫 순간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첫 아이를 낳았고, 누군가는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야심차게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들도 있습니다. 거리두기가 미덕이었던 2020년에 인생의 ‘처음’을 겪은 이들은 작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또 새해에 기대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전합니다.

〈1〉 생애 첫 코로나, 첫 아이를 낳았다 - 출산맘 2인의 이야기

이태경(32) 씨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한 작년 3월 첫아이를 낳았다. 이에 앞서 1월 병원에서 촬영한 초음파 영상을 통해 태아가 심장에 구멍이 생기는 심실중격결손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태경 씨 제공]

에피소드 #1 : 혼란스러운 세상에 빨리 나온 너, 지켜낼 수 있을까?

출산, 진짜 고통은 그 이후 시작됐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심장에 구멍이 있다고 했다. 의사는 검게 일렁이는 초음파 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뱃속의 아이는 묽은 점토처럼 합쳐졌다 뭉개지며 작고 또렷한 심장의 구멍을 내보였다. 2020년 1월 아이를 품은 지 28주 만이었다. 신생아 50명 중 1명은 아물지 않은 심장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의사는 아이가 커가면서 심장이 닫힐 수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심실중격결손이라는 병명은 끝내 외우지 못했지만, 진찰을 받으러 갈 때마다 한결 같이 물었다.

“아이의 심장은 닫혔나요?”

아이는 예고 없이 왔다. 2020년 3월 중순 임신 38주차.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순산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했다.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떠들썩했지만, 매일 14층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3월 23일 속옷에 붉은 피가 맺혔다. 분만실에 전화를 해보니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가진통(가짜 진통)이라고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 과자를 그득그득 씹으며 조여오는 통증을 참았다. 그렇게 12시간이 흘렀다. 육중한 트럭이 배를 밟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의 역치를 치고 나서야 육감이 진짜임을 깨달았다.

강서 미즈메디 병원에서 분만을 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질렀다. 코와 입을 가리니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간호사는 “산모가 산소를 잘 들이마시지 못하면 아기가 편안하게 나올 수 없다”며 주의를 줬다. 아이는 2시간 넘게 뱃속을 휘젓고 다닌 후에야 미끄럼틀을 타듯 자궁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산모도, 의사도, 간호사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맨 얼굴의 아이를 받아들었다. 환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자 “예쁘다, 예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동이 트지 않은 3월 23일 새벽이었다.

2020년 3월 26일 강서 미즈메디 병원. 이태경(32) 씨가 출산 직후 딸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며 "예쁘다, 예쁘다"고 말하는 모습. [이태경 씨 제공]

3월 26일. 고작 3일 된 아이를 안고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해야만 했다. 한겨울 칼바람이 피부를 강타했다. 긴 천으로 아이를 둘둘 감아 양팔이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병원 입구는 코로나 선별 진료소가 설치된 정문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된 상태였다. 흰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간단한 검사를 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런 시기에 낳아서, 바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지 못해서. 엄마 잘못은 아닌데 그래도 엄마가 미안하다고 혼잣말을 삼켰다.

아이의 심장엔 구멍이 두 개가 있었다. 의사는 “아직까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고, 심실중격결손을 앓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1살 전에 구멍이 닫힌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100일, 1년, 2년 그리고 3년 언제나 병원을 찾아 햇살에 야물어가는 오곡 같은 심장을 확인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4월 초 검사를 마치고 그토록 원하던 산후조리원에 입소했다. 창밖에 만개한 벚꽃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잠잠하던 호르몬도 덩달아 출렁였다.

2019년 11월 20일. 임신 16주였던 이태경(32) 씨는 남편 양선모(37) 씨와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출산보다 출산 후의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태경 씨 제공]

온갖 구멍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눈에선 눈물이, 가슴에선 모유가, 자궁에선 피가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여자가 아닌 젖소가 된 기분이었다. 몸을 풀기 위해 마사지를 받을 때면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복받치는 감정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조동(조리원 동기) 모임’도 갖지 못했다. 산모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원초적인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외부인 방문이 금지돼 의지할 것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고, 외부 방문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후에야 출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2주 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모든 산후조리원의 가족 방문이 막혔다. 인간이 가진 모든 층위의 감정을 경험하는 동안 남편은 침착하게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양하율, 양하은…. 수많은 후보군에서 건져올린 이름은 양하이. 엄마 이태경과(32)과 아빠 양선모(37)의 첫 딸. 이젠 인생의 전부가 돼버린 세 글자다.

2020년 8월 12일 경기도 파주. 이태경(32) 씨가 첫 딸인 양하이 양을 안고 있는 모습. 출산 후 '딸바보'가 된 이 씨는 청력이 갑자기 좋아졌다고 착각할 정도로 아이가 내는 모든 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인다. [이태경 씨 제공]

하이를 낳기 전에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잘 살다가, 아파서 때가 되면 죽어야겠지. 죽음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었다. 이젠 기필코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하이가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 하이가 아이를 낳아 몸도 마음도 허물어질 때,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고 싶다. 하이에게 힘들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10년이나 15년 후, 하이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코로나를 배울 때 엄마는 어땠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땐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엄마는 그런 시국에도 널 낳아 행복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태경 씨는 2019년까지 6년 동안 지적장애 특수학교 교사로 일했다. 첫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지만, 언젠가 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복지센터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하이는 여전히 심장에 두 개의 구멍을 갖고 있지만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에피소드 #2 : 다음달이면 ‘육휴’ 끝…복직을 소망한다

출산, 코로나가 피부로 와 닿았다

“아이 태어났습니다. 오후 5시 13분. 남자아이 입니다.”

분만실 간호사가 아들이 세상으로 나왔음을 알렸다. 그들은 핏덩이의 얼굴을 대강 닦고선 깨끗한 천으로 감싸 은별(36) 씨에게 보여줬다. 손도 잡게 해줬다. 2020년 2월 18일. 10개월을 배에 품고 있던 ‘쥬니’(태명)와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수술하게 해서 미안해.” 아이 얼굴을 보자 이 생각부터 떠올랐다.

이틀 전까지 그는 자연분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사는 ‘아이가 충분히 컸으니 낳아도 되겠다’고 했고 은별 씨는 받아들였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그런데 ‘약발’이 받질 않았다. 촉진제를 맞고 24시간이 지났는데도 산통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 거였다. 대기실의 침대는 딱딱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더 버티다가 자연분만하겠느냐, 수술(제왕절개) 하겠느냐고 의사가 물었다. 그는 수술을 택했다.

태명(쥬니)는 2세를 뜻하는 영단어 주니어(junior)에서 따왔다. 다음달 첫돌을 앞둔 쥬니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박로명 기자]

구순을 넘은 외할머니가 첫 증손자라며 유독 기뻐하셨다. 하지만 산부인과는 가족들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이었다. 은별 씨는 출산하고 6일을 더 병원에서 지냈다. 그 사이 남편은 오로지 한 번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갓난이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겼다. 손주 얼굴 생각이 간절한 양가 부모님은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 은별 씨를 비롯한 산모들만 신생아실 드나들면서 아이 얼굴을 보고 수유를 했다.

병원을 나와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조리원에서도 남편을 뺀 가족들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은별 씨가 입원하던 날부터 조건은 까다로워졌다. 남편은 산모와 함께 지낼 수 있지만 한 번 외출하면 재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 산모 프로그램도 줄줄이 취소됐다.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100명을 넘어선 무렵이었다. 대구·경북권 상황이 유독 나빴다. 은별 씨 남편은 겨우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출근했다. “그러곤 다시 못 왔어요. 2주 동안 저 혼자 있었어요. 출산과 함께 코로나를 피부로 느끼게 됐죠.”

은별 씨가 2020년 2월 산부인과 수유실에서 찍은 쥬니의 발가락. 산모를 제외한 가족들의 면회가 차단되면서 가족들에게 매일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했다. 보통 사진 30장, 영상은 5~6개씩 남겼다. [남은별 씨 제공]

돌아갈 수 있을까

은별 씨는 대학 4학년이던 2006년 12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본사에 취업했다.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상영관 숫자를 늘려나가던 시절이었다. 기말시험 안 치러도 된다며 의기양양 출근했던 신입사원은 어느덧 15년차 직장인이 됐다. 2016년 결혼한 남편도 회사에서 닿은 인연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는 휴일을 보냈다. 하지만 휴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무려 1년이나. 그는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9개월을 신청했다.

지난 1년 회사 사정은 많이 어려워졌다. 주말이면 상영관마다 빈자리가 없던 풍경은 사라졌다. 회사는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단 이야기도 들렸다. 몇몇 영화관은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동료들은 사무실 분위기가 무겁다고 전했다. 은별 씨는 출산한 뒤에 일을 이어가겠단 의지가 컸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을지 몰라, 하는 조바심이 피어올랐다.

경력단절은 사실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지만, 최근 은별 씨에겐 당면한 이슈가 됐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은 시점에 염려되지만, 단단한 가정 경제를 구축하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라고 은별 씨는 말했다.[박로명 기자]

“은별 씨, 나 퇴사해.” 작년 11월 말이었다. 회사의 한 여자 선배가 연락을 해왔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연달아 출산하면서 2년 6개월 육아휴직을 보낸 선배였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말랐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보도됐다. 그러자 스스로 복직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은별 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남 일이 아니구나. 이런 상황에선 둘째를 계획했더라도 절대 낳을 수가 없겠다.’

연말에 인사팀 직원이 연락을 해왔다. 에정대로 복직 하겠느냐고 물었다. “네 복직 예정입니다. 그간 저희 팀장님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왔습니다.” 은별 씨는 분명하게 답했다. 새해 들어서 회사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같이 일하던 얼굴들도 일부 자리 바뀜이 있었다. 이달 중 새로 옮겨온 상사와 복직 면담을 해야 한다.

첫돌을 앞둔 쥬니 뒤뚱거리며 걷는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주고 싶다. 지금으로선 집, 그리고 아파트단지 정도가 아들의 세계의 끝이다. 더 큰 세계를 보여주려면 가정경제가 단단해야 한다고 은별 씨는 믿는다. 남편과는 “최대한 복직에 힘을 쓰자”고 말했다. 만에 하나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불안감이 마음 구석에 도사리고 있지만 아이에게 드러낼 순 없다.

〈인터뷰를 마치며〉

은별 씨와의 인터뷰는 2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지난 연말 1차 인터뷰에서 복직이 확실치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주기 어려울 수도 있단 위기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최근 두 번째 인터뷰에선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1년은 단지 내 어린이집에 쥬니를 맡기고, 이후엔 직장어린이집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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