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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법과 현실 사이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멍들게 했던 극단적 사회 분위기를 반추해 보면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영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유명한 이 말은 인간은 자기보존을 하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비극적 상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약에 의해 ‘리바이어던’이라고 하는 국가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홉스(T. Hobbes)·로크(J. Locke)·루소(J.J. Rousseau)와 같은 이른바 자연법학자들이 가졌던 기본적인 생각이었고, 동시에 오늘날의 국가나 법·제도를 설명하는 유용한 틀로 인식되고 있다. 위와 같은 사회계약론에 있어서의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를 존 롤스(J. Rawls)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판단하는 원초적 입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을 요즈음 거래관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정성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거래당사자 간 계약 내용은 자연 상태에서, 즉 존 롤스가 말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서 선택된 정의의 원칙대로 체결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도출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 어긋나는 계약은 불공정하고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대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소간 수정은 불가피할 수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자연적 상태에서의 원초적 상황에 부합하게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존 롤스는 ‘반성적 평형’이라 부르고 있다. 크게 보아 이러한 틀을 벗어나면 이를 불공정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사후적으로 교정하고 정의의 원칙대로 되돌려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이다.

지난해 모 육가공업체 대표의 호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언론에서 접한 적이 있다. 그 업체는 대형 마트를 상대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였고 조정원은 조정안을 제시하였지만, 피신청인의 거부로 조정이 무산되자 공정위에서 다시 조사하여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이었다. 과징금 규모 때문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피해를 본 육가공업체 입장에서는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행정소송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고, 실제 구제를 받으려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육가공업체 대표의 호소는 현재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제도에서 조정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만약 소송에서 공정위 처분대로 확정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야말로 ‘조정이 되었더라면’ 결과적으로 쌍방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교훈도 당장에 앞이 낭떠러지인 업체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언어적 사치일 뿐이라는 데서 답답함을 느낀다. 이는 비단 이 업체만 겪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어 공정위 시정 조치 이후에도 조정원에서 조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제도가 잘 활용되어 거래관계가 조기에 정상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동권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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