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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주파수와 흥정의 기술

[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면 빠지지 않는 것이 흥정이다. ‘3만원 정도면 사겠다’ 싶은 물건이 보여 가격을 물어보면 주인은 5만원을 부른다. 2만원에 달라고 해본다. 주인은 그럼 다시 3만원에 가져가라고 제안한다. 탁구공처럼 오고 가는 흥정 끝에 결국 3만원에 물건을 구매한다. 나는 예상했던 가격에 기념품을 사서 좋고, 주인도 어차피 여행객에게 일단 가격을 높게 불렀을 테니, 밑지지 않고 물건을 하나 더 팔아 좋다. 이래저래 만족스러운 거래다.

최근 정부와 통신3사의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 과정에서 여행지 시장에서나 봤던 ‘흥정의 기술’이 엿보였다.

정부가 내년 6월 사용이 만료되는 310㎒ 주파수 재할당 가격을 최저 3조1700억원으로 결정했다. 통신3사가 주파수를 5년간 사용하는 값이다. 단 2022년말까지 통신3사 5세대(5G) 통신 기지국을 12만국 이상 구축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물론 조건을 채우지 못할 수록 가격은 비싸진다. 10만~12만국이면 3조3700억원, 8만~10만국이면 3조5700억원, 6만~8만국이면 3조7700억원으로 가격이 오른다.

1조6000억원(통신사), 4조4000억원(정부)으로 팽팽하게 맞섰던 입장차도 어느 정도 간격을 좁혔다. 정부를 대상으로 정보공개까지 청구하며 유례 없는 초강수를 뒀던 통신사도 최종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갈등이 봉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갈등은 정말 끝난 것일까.

가격은 정해졌지만 오해는 불식되지 않았다. 당장, 논란의 핵심이 됐던 과거 경매가 반영 비율은 여전히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그동안 통신업계는 주파수 ‘재할당’인 만큼 과거 경매가 반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통신업계는 이번 가격에 과거 경매가가 70~80%까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50% 수준을 웃돈다.

이는 결국 과거 경매가 반영 비율은 명확한 기준 없이 언제든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통신업계 안팎에서 “필요에 따라 그 때 그 때 뜯어내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격한 뒷말이 아직까지 무성한 것도 같은 이유다.

5G 기지국 ‘12만국’ 구축에 대한 조건 역시, 여전히 완벽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 듯 하다. 최저가 조건이 15만국에서 12만국으로 조정된 것과 관련해 한 관계자는 “한 달 뒤에 20㎏을 빼라고 했던 걸 10㎏를 빼라고 한 것”이라며 “3만개를 내려준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며 여전히 도전적인 목표”라고 평가했다.

결국 논란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주파수 재할당가를 산정하는 기준 수립이 필요하다. 업계, 학계, 국회에서도 혼란을 줄이기 위해 주파수 대가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관련 법안도 발의됐지만 통과까지 갈 길이 멀다.

지금부터라도 투명한 대가 산정 기준을 만들어야한다. 주먹구구식 산정방식이라면 5년 후 똑같은 논쟁이 반복 될 수 밖에 없다. ‘흥정의 기술’은 여행지에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sjpar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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