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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日의 쇠락이 반갑지 않은 이유

일본은 줄곧 우리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몰염치한 원망의 대상이면서도, 그들이 가진 근면성과 끈기, 기술에 대한 집착과 열정 등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얄밉지만 일본은 실로 대단했다. 2차대전 패전국에서 기적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심지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경제력을 키웠다. 일본은 경제적 성장을 넘어 ‘초밥’으로 대변되는 소프트파워에서도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5년 플라자합의는 급부상하는 일본을 타깃으로 한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본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극일(克日)은 ‘일본을 이김 또는 그런 일’이라는 의미로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한 나라에 대한 극복을 당위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사전에 실릴 만큼 일본은 남달랐다.

2020년 현재 극일은 현실이다. 전 세계를 평정한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극일의 상징과도 같다. 삼성은 1983년 3월 ‘왜 우리는 반도체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내놨다. 이에 같은 해 일본의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의 보고서를 냈다. 미쓰비시연구소는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로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엄밀히 말해 비아냥이자 조롱이었다.

현 시점에서 작은 내수시장을 빼면 모두가 남의 이야기다.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속국이어야 하느냐. 기술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나서야 한다”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었다. 더 자신감을 갖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자면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의 향기가 느껴진다. 한국의 메모리반도체는 전 세계 시장을 과점하는 절대강자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우리의 한식과 패션은 한류에 힘입어 소프트파워를 키워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방역 환경은 대한민국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속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오히려 성장을 거듭한다. 산업의 영역 앞에 ‘K’를 붙이는 현상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기습적인 수출규제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실패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일본도 국운의 정점을 찍은 뒤가 문제였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경직된 사회문화로 수십년째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일본을 타깃으로 패스트팔로(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일관한 우리의 미래일 수 있어 섬뜩하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는 이미 일본의 속도를 넘어선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게 기업의 야성과 창의성이다. 이마저도 무너진다면 대한민국호(號)는 급격히 침몰할 게 자명하다. 기업가들의 입에서 ‘머뭇 거릴 시간이 없다’ ‘초유의 불확실성’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언급되는 건 결코 엄살이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기업관은 요지부동이다. 강한 반발에도 연내 기업규제 법안은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유사 이래 최고조에 달한 중흥의 시대를 스스로 걷어차려는 게 아닐지 심히 우려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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