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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약이 되살린 의약분업 갈등…조제권 놓고 의사-약사 충돌
모자보건법 시행되면 먹는 낙태약 사용 가능
의료계 “낙태약, 산부인과 의사 관리하에 사용헤야”
약계 “의약분업에 예외둘 수 없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정부가 낙태와 관련된 내용의 모자보건법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먹는 낙태약이 사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제권을 두고 의료계와 약사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먹는 낙태약으로 인해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큰 갈등을 겪었던 의사들과 약사들의 대립이 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는 낙태 허용에 대한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낙태 허용 요건 조항을 신설했다.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기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 또 임신 15∼24주 이내에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조건부로 낙태를 할 수 있다.

특히 개정안에는 낙태 방법에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을 추가로 허용하기로 했다. 현행법에는 낙태 수술만 규정돼 있다. 이렇게 되면 유산을 유도하는 이른바 ‘먹는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미프진은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해 유산을 유도한다.

문제는 이 약의 조제권을 두고 의료계와 약계가 서로 자기들이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사단체는 복지부에 낙태약은 의약분업의 예외로 두고 의사 직접 조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은 약물 낙태는 투약 결정부터 유산의 완료까지 산부인과 의사의 관리하에 사용해야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사법 제23조 4항에 따르면 의학적 필요와 환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는 의약분업 예외 약품 지정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낙태약 조제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약국에 낙태약이 유통될 경우 관리 부실의 우려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회장은 “병원에 들어온 약은 나갈 때까지 알 단위로 정확히 관리가 된다”며 “만일 낙태약이 전국 약국에 깔리면 도매상이 유통하는 과정이 철저히 관리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약사회(약사회)는 낙태약에 대해서만 의약분업 원칙에 예외를 허용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의약분업이라는 대의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낙태약에만 예외를 적용하는 건 지나치게 자의적인 기준”이라며 “환자의 사생활 보호 목적이라는 논리로 가면 그 어떤 질병도 환자의 사생활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약사도 환자의 사생활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왜 병원에서만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오히려 응급 사후피임약 처방이 엉뚱한 과에서 이뤄지거나, 심지어 남성이 방문해도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면 병원의 약물 관리가 안전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약분업은 지난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제도로 의사는 진료 후 의약품을 처방하고, 약사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 및 투약하는 분업 시스템을 말한다. 이전에는 병원에서 약사를 고용해 병원에서 진료와 약 처방까지 한꺼번에 이뤄졌다. 하지만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와 약계는 큰 충돌을 빚었다. 서로 조제권을 갖기 위해서였는데 이에 의약분업은 1993년 문민정부에서 입안이 되었지만 3차 분쟁까지 이어졌다. 2000년 제도 시행을 앞두고는 전국 의사들이 단체로 휴진하며 의료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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