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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광화문덕이다] 18화 "야!!! 바위!!!"..."어??? 난 보자기!!"

  • 37년 한 자리를 지켜온 '명동 돈가스'...'명품의 가치는 신념'
  • 기사입력 2020-10-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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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지 말까... 이렇게까지 해서 사야 하나...'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됐다. 늘 맘고생만 시켰던 탓에 이번 아내의 생일에는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무얼 사줄지 고민하던 중 낡은 아내의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한 번 질러보자'

연애하고 결혼 기간까지 하면 10주년인 셈이니 이번에 한 번 제대로 질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내게 좋은 빌미가 된 셈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을지로 롯데백화점으로 출근(?)했다. 인터넷에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살 수 있다고 해서다.

오전 8시쯤 도착해보니 일요일 아침임에도 이미 10여 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앞에 있는 이들은 일찍 나온 탓인지, 대부분 캠핑용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구나'

어리둥절했다. 난 15번째로 줄 섰고, 기다린 지 3시간 30여 분이 지나서야 겨우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동전 지갑은 없었다. 앞서 들어갔던 이가 사가서 동났다고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사야 하나' 싶기도 했으나, 10주년 기념 선물이니 이 정도 노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 토요일 오전 8시쯤 다시 찾았다. 이번엔 28번째다. 이날은 4시간 30여 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갑이란 제품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3시가 다 됐다. 아침 7시쯤 집에서 나왔으니 내 삶의 7시간여가 사라진 셈이다. 허망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그리고 알게 됐다. 되팔기를 목적으로 제품을 사가는 속칭 업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백화점 입구 앞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새벽 2~3시부터 대기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노숙을 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그들은 유명인들이었다. '리셀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다시 도전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새벽 5시 반에 나와 백화점 앞에 6시쯤 도착했다.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려 도착했지만... 좌절했다.

'아 정말 안 되겠구나'

이미 10여 명이 먼저와 있었다. 어떤 이는 캠핑 의자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어떤 이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다. 여기서 밤샌 듯 보였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하게 말했다.

"요새 아침마다 그거 사러 다닌 거였어? 그렇게까지 해서 살 필요 없어. 그만큼 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할 만큼 한 것 같아. 어서 와. 밥 먹자"

아내는 나를 다독였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짜잔~"하며 아내 생일에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는 내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백화점 앞에서 몇 시간을 줄 섰음에도 빈손으로 나온 쭈글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건의 가치'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는 제품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을 사 간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자신만이 가진 기술과 혼을 담아 제품을 만들고 이에 대한 가치를 매겨 시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는 돈이라는 화폐를 수단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한다.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 시장경제는 돌아가게 된다.

그러다 책정된 가격 그 이상의 가치를 주는 제품이라고 회자되는 제품은 사려는 사람이 많아져 가격이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시장의 수급 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다. 자유로운 경제 질서 속에서 소비자는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자기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건전한 시장구조다.

〈나는 광화문덕이다〉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받으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들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봉이 김선달(?)'이 끼어들면서 발생한다. 봉이 김선달은 조선 시대 인물로, 대동강 물이 자기 것이라고 말한 뒤 상인들에게 판 일화로 유명하다.

'만약 봉이 김선달이 지금 우리 시대에 살아있다면?'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남들이 만든 소량의 제품을 이른 새벽 서리하듯 매점매석한다. 소유의 목적이 아닌 되팔아 이익을 보려는 속셈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A제품을 사서 되팔면 재테크가 된대"라는 소문이 돌고, 되팔아 수익을 낸 이들의 이야기가 영웅담처럼 퍼져나간다.

이른 아침 줄 서서 고생하면 손쉽게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수십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혹해 '봉이 김선달'들은 계속 늘어난다.

시장 가격은 왜곡된다. 정작 자신의 기술과 노력을 들여 제품을 만든 이가 적정가라고 생각해 정한 가격은 더이상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매점매석으로 품귀현상을 주도한 봉이 김선달님들이 시장 가격을 통제하게 된다.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 된다.

봉이 김선달님들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봉이 김선달님들의 목적은 '폭리'다. 사전적 의미로 폭리라 함은 상대의 약점을 노려 부당한 이익을 꾀한다는 뜻이다.

가장 쉽게 폭리를 취하는 방법은 바로 '매점매석'이다.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폭리를 얻기 위해 물건을 몰아서 사들여(매점) 금방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비싼 값을 받기 위해 상인이 물건 팔기를 꺼리는 일(매석)이 바로 그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봉이 김선달님들이 개입하면 시장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과 아파트 매물은 정해져 있고 그걸 사고자 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난다. 봉이 김선달님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물을 서리하듯 거둬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시장 가격을 재책정한다. 호가가 뛰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안 팔면 그만이다. 간절한 자가 지는 게임판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아서다. 그들이 시장가격을 주무르기 시작하며 시장경제는 왜곡된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심리'다.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이 돌거나, 오르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면 사려는 이들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좀 더 기다렸다가 사야지'하던 배짱 좋던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하는데...'라는 불안감만 더 커진다.

봉이 김선달님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잠정적 수요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호가는 뛰기 시작한다. 호가는 곧 시장가로 바뀐다. 여기에 다시 호가가 붙고 이는 다시 시장가가 된다. 가격은 오르기 시작한다. 봉이 김선달님들이 시장을 보기 좋게 점령했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고 가격이다.

흔히들 이야기한다. 공급을 늘리면 시장경제는 안정될 것이라고.

하지만 봉이 김선달님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이러한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공급이 아무리 늘어나도 그들이 움직이면 가격은 뛴다.

근데 본질을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규제를 통해 억압해서 될 일이 아니다.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엄청난 파장을 예측하기도 어렵고 감당하기도 어려워서 못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 아울렛 한 번 가볼까?'

시무룩해 있는 내게 아내가 쇼핑을 제안했다.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알아서인듯했다.

마침 아내는 갖고 싶은 지갑이 생겼다고 했다. 자그마한 동전 지갑. 아울렛에 전화해보니 작은 사이즈의 동전 지갑은 백화점에만 있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백화점으로 다시 향했다. 마침 해당 브랜드는 10% 할인을 하고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동전 지갑 사겠다고 기다렸다가 허탕만 쳤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었나' 후회가 들기도 했다. 전화위복일까. 마침 백화점에서는 상품권 행사도 하고 있어 추가로 받았다.

"고마워 잘 쓸게"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가족이 시내로 나온 김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아내와 아들은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돈가스라면 인근에 '명동 돈가스' 집이 있다.

9년 전 아내와 같이 왔던 가게를 아들과 함께 셋이 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아내와 연애할 때 줄 서서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해보려 애썼다. 그때 그 느꼈던 애틋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명동 돈가스'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맛도 서비스도 그대로였다. 이날 나이 지긋이 드신 서빙하시는 분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가게와 함께하시며 어느새 노년이 되신 분들, 그분들은 이 가게의 산 증인일 테니 말이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말이다.

명동 돈가스는 1983년 명동에서 문을 열며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가 햇수로 37년째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신념으로 오직 돈가스를 위해 인생을 바쳤고 그 결과 명동 돈가스는 명동의 역사와 함께 하는 명품이 되어가고 있다.

명동 돈가스는 고기의 숙성, 튀기는 법을 일본에서 전수받았지만 한국에 맞는 소스를 개발해 접목했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제품에는 그 제품을 만든 이의 인생이 담겨 있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정성들, 그리고 그만의 인생 철학 등을 담긴 제품을 우리는 흔히 '명품'이라 부른다.

오랜 세월을 꿋꿋이 견뎌내며 신념을 잃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명동 돈가스'처럼 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명품이 되려면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야 하고 그 가치가 외부의 변수에 의해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때론 시장을 왜곡하는 봉이 김선달님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때론 봉이 김선달님들로 인해 뜻밖의 호재를 맞이할 수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최근 자주 보는 영화 '더 킹' 속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교란시킨다. 우리는 이걸 전문적으로 야바위라고 한다. 빨간 콩만 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빠른 손기술과 화려한 언변에 곧 한눈팔게 돼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빨간 콩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된다. 언제 속임수에 당할지 정신 차려야 한다. 아니면 백발백중 당한다"

글 = 광화문덕

정리 = 홍승완 기자

일러스트 = 이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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