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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인규의 현장에서] 백신 유감

“제가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라 매년 독감 예방접종을 했는데 그래도 가끔 독감에 걸리고는 했거든요. 그때마다 ‘면역력이 약해서 걸린 거겠지’ 하며 나를 탓했는데…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쩌면 독감에 걸린 게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도 백신에 대해 의심해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백신을 맞더라도 예전 같은 믿음을 갖기는 힘들 것 같아요.”

최근 한 지인이 독감 백신의 상온 노출 사건에 대해 한 말이다.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파장이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질병관리청은 독감 예방접종사업(13~18세, 62세 이상 대상) 시작을 하루 앞두고 긴급하게 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한 배송업체가 백신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냉장 유통(콜드체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578만명분에 대한 품질검사를 실시해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접종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조사에 약 2주가 소요될 것이라 했는데 현재까지 정부는 백신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조사 중인 백신이 안전하냐, 그렇지 않냐가 아니다. 설령 해당 백신이 안전하다고 나와 다시 접종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에게 백신은 신뢰를 잃은 상태다.

더구나 정부는 처음에는 조사 중인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가 이달 3일까지 총 2290건의 접종을 확인했다. 정부는 백신이 접종된 이유로 의료기관의 관리 부주의, 사업 시작 전 접종, 중단 안내 이후에도 인지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 투약되는 의약품은 무엇보다 안전성이 우선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점이 확인되면 모든 의료기관에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만약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항암제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됐다는 것이 확인됐는데 이 정보가 전국 의료기관에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앞선 지인처럼 그동안 백신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사람 중 불신을 갖게 된 사람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백신을 맞으면서도 확신이 없다보니 예방접종 후에도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고, 행여 백신이 아닌 다른 비과학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금이 간 백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정부는 문제가 된 백신에 대한 조사와 함께 백신 제조, 유통 등 전 관리에 대한 철저한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전 세계가 애타게 기다리는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맞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백신을 믿지 못하는 사회, 팬데믹 시대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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