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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고도를 기다리며’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막연한 기다림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만드는 상황을 냉철한 시각으로 표현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50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물론 작품에서조차도 명확한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고도’에 대한 해석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을 정 도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제를 던지고 있다 하겠다.

최근 한 일간지에 대(對)중국 소재·부품 무역수지 추이가 심상치 않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난해엔 약 273억달러로 흑자였지만 지난 2014~2018년 많게는 467억달러에서 적게는 396억달러 규모였던 것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게 살펴봐야 할 점이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일명 ‘반도체 착시효과’로, 반도체를 제외하면 그 수치가 무려 83억달러로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표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산업을 옥죄어온 대(對)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점차 중국으로 옮겨갈 확률이 높다는 예측에 힘을 더한다. 소재·부품산업은 우리 제조업의 뿌리로 수출을 견인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한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른 시일 내에 주요 핵심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도 전에 중국과 같은 후발국에 쉽게 휩쓸리고 말 것이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로 시작된 소재 국산화 노력은 점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반도체 소재기업인 동진쎄미켐은 이르면 올해 안에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양산할 계획이며, 솔브레인은 이미 일본과 같은 수준의 액상불화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산학연관이 합심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빠르게 대응했다. 3대 품목의 자체 생산 및 수입처 다변화는 물론, 100대 품목을 지정해 재고 수준을 종전 대비 2~3배 확대하고 미국과 유럽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등 수입처를 확보했다.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기업의 애로 해소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정책컨트롤타워로 소부장경쟁력위원회를 본격 가동해 정책 수입과 협력모델 승인, 대책상황 점검 등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과기부가 지난 6월 출범한 소재혁신선도 프로젝트도 이러한 과정의 일환이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100대 핵심 품목 중심으로 주력산업의 핵심 소재·부품의 대외의존도를 해소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본 프로젝트는 향후 5년간 총 2066억원을 투입해 100대 핵심 품목에 대한 조속한 자립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가만히 기다리던 그에게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에스트라공은 그런 블라디미르에게 계속해서 떠나자고 설득했지만 그는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체가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맹신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블라디미르도, 기다림에 지쳐 제자리를 맴돌았던 에스트라공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를 맞는 적극적인 준비 자세가 혁신을 향한 발걸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소재 국산화를 향한 작은 움직임이 곧 다가올 변화의 물결을 이끌어내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강성렬 재료연구소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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