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기원전 6세기 여성시인 사포는 고전 연구가들에게 하나의 의문부호였다.

여성이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시를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포의 시를 해석하는 이들은 사포의 시에 포함된 성적 취향에서 사포를 구출하려하거나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쪽으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리스 로마 연구의 권위자인 메리 비어드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사포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당시 발언은 남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비어드는 사포의 시 ‘아프로디테의 찬가’에서 남성 위주의 문학 서사 전통에 대한 전복을 발견한다. 이 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중 영웅 디오메네스가 여신 아테나에게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시인은 이런 모방을 통해 전사들의 전쟁 서술 경험에 쓰이는 언어를 사랑에 빠진 여성들의 경험을 서술하는 언어로 바꿈으로써 ‘영웅 위주의 기존 질서’ 전체를 효과적으로 뒤집는다”고 분석한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고전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비어드는 ‘고전에 맞서며’(글항아리)를 통해 고전읽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 세계를 살피는 31개 주제를 놓고 앞선 연구자들의 저서를 논평하는 형식인데, 가로 세로 오가며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세심하게 찾아내는 식견이 놀랍다. 여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한니발, 율리우스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 칼리귤라 등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로마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 노예들을 해방시켰는지 등 논쟁적인 주제도 들어있다.

비어드는 현재의 관점에서 그 시대를 보면 항상 새로운 질문이 생기고 새로운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고전연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비어드의 지적 중 인상적인 대목은 기원전 5세기 말 투키디데스가 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문제다.

이 전쟁사는 거의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신들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정치와 권력투쟁이란 관점에서 쓴 혁명적인 이 작품은 모호한 언어로 고대의 독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저자는 이와 관련, 현재 투키디데스의 글에서 애용되는 인용구나 슬로건은 원본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며, 번역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가장 유명한 인용구인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약자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느라 고달프다”는 말은 투키디데스가 썼던 표현이 아니란 것.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고, 약자는 따른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에번스 경의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발굴이 상상력으로 메워졌다는 점도 지적한다.

비어드는 고전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수백년 동안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사람들, 로마인들의 말을 전하고 인용하면서 재창조 작업읋 해온 사람들과의 대화임을 강조한다.

또한 고전이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닌 오늘날 살아있는 텍스트로서 우리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들려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고전에 맞서며/메리 비어드 지음,강혜정 옮김/글항아리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