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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힘겨운 가을의 문턱에서

소설 ‘청동정원’ 개정판 발간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넘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요양병원 직원의 말로 짐작하건대 골절이 의심되는데 마침 전공의 파업 중이었다.

구급차를 불러 우리 집 근처 M병원에 갔다.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침대에 누운 어머니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는 내게 ‘돈 들어갈 일 생겨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착한 엄마. 착한 치매에 허리도 불편한 어미를 요양병원에 보낸 것만도 죄송한데, 내가 같이 살며 돌봤다면 낙상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자식을 원망하기는커녕 미안해하는 어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우려했던 대로 당신은 고관절이 부러졌고,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입원 절차를 밟았다.

수술을 앞둔 어미를 옆에 두고도 나는 곧 나올 신간의 홍보를 염려했다. 작가인 나는 책 뒤로 숨고 싶고, 1인출판사 대표인 나는 잔머리를 굴려 이런저런 홍보를 구상한다.

페이스북에 출간 전 연재를 마친다는 글을 올리고,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고 언론사에 책과 보도자료를 보내고, 오후에 짐을 싸서 병실에 들어갔다.

7일의 낮과 밤을 병원에서 먹고 잤다. 4인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첫날은 당연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좁은 잠자리,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들고 비명을 지르는 환자들. 가장 힘든 건 24시간 마스크 착용이었다. 병실에서는 잘 때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두 번째 밤부터는 잠을 좀 잤고, 사흘째부터는 내 집에서보다 잘 잤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하게 마련이다.

동생들이 하루건너 낮에 교대해줘 견딜 만했다. 간병인을 쓰라고 난리 치는 동생들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심신이 지쳐 점심때가 지나도록 세수를 하지 않았고, 어미의 몸을 억지로 움직여 기저귀를 갈고 나면 허리가 아팠다.

수술 전후로 중요한 시기에 남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싶지 않아, 엄마가 간병인을 낯설어할까 봐 힘들어도 내가 돌보기로 마음먹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게 문제였다.

간호사가 엄마를 돌본다면 믿고 맡길 수 있겠는데, 우리 엄마처럼 재활이 필요한 환자는 원칙적으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열도 떨어지고 오줌 줄도 떼고 대변도 당신 힘으로 시원하게 본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간호사의 도움으로 화장실 변기에 앉힌 뒤 육체의 한계를 절감한 나는 간병인을 두었고, 덕분에 지금 내 집의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미를 돌볼 방법은 없을까?

실밥을 뽑으면 퇴원해야 하는데 퇴원 후 마땅히 어미가 갈 곳이 없다. 내 집에 모신다 해도 나 혼자 어미를 감당할 수 없다. 삼시 세끼 먹이고 기저귀는 갈 수 있겠지만 당신이 다시 걸을 수 있게 재활을 시킬 공간도 힘도 내게 부족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보호자의 병원 출입이 제한돼, 병실에 보호자나 간병인 1인만 있을 수 있는데 나도, 간병인도 엄마를 혼자 변기에 앉힐 수는 없다. 성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엄마를 휠체어에 앉힐 수 있다.

우리 엄마처럼 치매가 있고 혼자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예외를 둬 보호자 1인의 병실 출입을 허가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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