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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이번 추석엔 가족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추석이 3주 후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추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추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가족끼리 모여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벌초하고, 명절 음식을 먹는 즐거운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취업은 언제 하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아이는 언제 낳는지 등등 가족 간의 불편한 대화로 갈등을 겪는 사람도 있다. 부모님을 만나거나 조상에 예를 차리기 위해,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시간에 왜 이렇게 만나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을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가족 내 문제는 부모와 자식, 부부간에 서로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경우가 많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형태가 핵가족 형태로 변화했지만 아직도 가족들 간에는 나 혹은 너의 독립적인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우리’라는 동일체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더 강하다. 이러니 자신의 심리적 영역과 다른 사람의 심리적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고, 서로 혼재돼 있다. 즉 자아 경계(ego boundary)가 명확지 않기에 가족들 사이에 심리적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만큼 가족 간의 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어 문제가 생기면 간단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체들이 모여 가족을 형성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아 경계가 불명확한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의 가지고 가족을 형성하므로, 개인으로서의 심리적 영역보다 가족 전체의 심리적 영역이 공유된다. 어린아이를 학대해 경찰에 간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는 내 아이를 내가 때리는데, 왜 남들이 참견하느냐’ 라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말에서도 가족 구성원을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가족의 부속품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듯한 가치관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가치관은 가족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지만 자라나는 아이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 개인의 인생에서 자아형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자기 정체성은 대부분 자라나는 과정에서 가정에서 형성된다. 개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요받아온 경우 건강한 자아형성을 하기 힘들다. 자아형성이 건강한 경우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명확하다. 반대로 자기 정체성이 잘 확립이 되지 않는 경우 자아의 분화가 잘 안 돼서 과도하게 순응적이 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너무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고집이 세지기도 한다. 자아경계선이 명확해야 비교적 대인관계가 유연하고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상호존중도 가능하다.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향과 가족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처럼 직접 얼굴을 맞대진 못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각자에게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건강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내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심코 뱉었던 한 마디가 가족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건강한 개인이 있어야 건강한 가족이 있으며, 건강한 가족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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