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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이제 일·여가·문화 복합공간…도시 디자인 미래 변화상 담아내야 ” [피플앤스토리]
염재호 SH미래도시포럼 대표가 말하는 21세기 정책 철학
“주택 문제는 젊은 층 주거트렌드에 초점맞출 필요… 고밀개발 두려워말아야”
“대학 28곳 있는 서울 브레인시티 최적환경…산학협력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 높여야
“지방 균형발전은 ‘교육’이 관건…전원생활 수요 맞춰 1가구2주택 벽도 낮춰야 ”
“ 정치나 공직에 들어가면 존엄하게 못살 것 같아 생각없어…남은 인생 재밌게 살겠다”

[대담=문호진 건설부동산부 선임기자] “일산에서 서울로 출근하는데 지하철로 40분 이상 걸립니다. 여기 3호선 열차 뒤쪽에 2량, 3량 더 달아서 이동하는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요. 요금은 5000원, 만원을 더 받더라도 편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매일 출퇴근하는 1시간 30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이 됩니다.”

염재호(65) SH미래도시포럼 대표(고려대 전 총장)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내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한편으론 “분명히 이 아이디어도 보건법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정책들이 너무나 경직돼 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관료주의적 원칙론에 빠져 자칫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만 보더라도 불과 석 달 사이에 6·17 대책부터 7·10 대책, 8·4 공급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강도 높은 일방통행 규제로 시장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염 대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20년 전 사고 방식”이라면서 “21세기 정책은 정부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염재호 SH미래도시포럼 대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에만 그치지 않고, 일도 하고 여가와 문화도 즐기는 개념으로 바뀔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는 것에 맞게끔 정부가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해묵 기자]

▶“주택 문제 해법은 고밀도 개발, 젊은 층에 초점 맞춰야”= 지난해 총장 임기를 마친 그는 올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CT정책고객대표자회의 의장과 서울주택도시공사 SH미래도시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SH미래도시포럼은 향후 미래도시에 대한 청사진과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월 발족됐다.

포럼에서 염 대표가 던지는 화두 중 하나는 정책 기조의 변화다. 그는 “앞으로의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에만 그치지 않고, 이곳에서 일도 하고 여가와 문화도 즐기는 개념으로 바뀔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는 것에 맞게끔 정부가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8·4 대책과 관련 “태릉골프장에 1만 가구 공급 추진 계획이 포함됐는데 개인적으로 화가 났다”며 “지금도 교통이 복잡한데 점점 더 젊은 사람들을 외곽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택문제 해법으로 도심 고밀 개발과 용적률·재건축 규제 완화를 꼽았다. 염 대표는 “이제는 직장과 주거가 같이 가야하는 시대”라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지역에 살 수 있도록 주택을 공급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남이나 명동 등 주거 선호지역에 50층, 100층짜리 아파트를 짓도록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심 고밀도 개발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건축이나 설계 기술이 부족하고 극심한 교통 혼잡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각종 스마트 기술 발달로 이 같은 약점이 극복 가능하다고 염 대표는 전망한다. 패시브하우스와 같은 에너지 저감 주택이 대표적이다.

택배와 같은 물류 시스템에서도 그는 “주요 아파트 지하에 거점 시설을 만들고 하이퍼루프처럼 터널을 이어서 로봇이 배송하게 하는 방안은 어떤가”라며 “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우리 상황에도 맞고, 현재 기술력으로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용적률을 높여 도심을 개발하면 빈 공간에는 공원이나 녹지가 늘어나고 주거 환경이 더 쾌적해진다.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임대주택 정책은 ‘생각의 전환’을 강조했다.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아파트도 중요하지만 젊은 층들이 원하는 새로운 주거형태의 임대아파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저층에는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어린이집이, 다른 한 층은 재택근무를 위한 1인 사무실, 이외에도 젊은 사람들이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공유 키친과 헬스클럽·음악감상실 등 각종 여가 공간이 들어선다. 임대아파트지만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염재호 SH미래도시포럼 대표는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과 토론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주 3일 근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면서 “우리나라도 10년 안에 주 4일 근무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진=박해묵 기자]

▶“서울 초집중화 오히려 강점, 지방 발전 ‘교육’으로 풀어야”= 서울의 초집중화 현상과 관련 염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해서는 “정답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서울에만 대학이 28곳 있고, 수도권까지 합하면 36곳에 달한다”면서 “대학원생과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100만여명의 고학력 인구가 몰려 있는데 전 세계 유례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의 강점인 ‘브레인 시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염 대표은 “이제 제조업도 단순히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닌 IT·스마트 등 4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 성장이 주를 이룬다”며 “이를 위해 서울 소재 대학과 산업이 연계한 산·학·연 클러스터 개발이 중요하다”고 전망했다.

성공한 클러스터 개발 사례로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스타 사이언스파크’를 들었다. 이곳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은 세계 2위의 IT 단지로, 정보통신기술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염 대표는 “스웨덴 정부가 사이언스파크를 설립하면서 스톡홀름 공대를 이전시키고 각종 교통시설과 인프라를 전폭 지원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지방 발전의 핵심 대책으로 수도이전 대신 ‘교육’을 꼽았다. 지자체가 교육 자치를 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허용하고, 젊은 세대부터 노년층까지 시민들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우수한 학교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 발달’과 ‘근무시간 단축’도 중요 열쇠다. 염 대표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반나절이면 한반도 거의 대부분 지역을 갈 수 있다”면서 “교통이 발달한 만큼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방에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근무시간 단축과 관련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과 토론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주 3일 근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면서 “우리나라도 10년 안에 주 4일 근무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염 대표는 주 4일제가 되면 근무일은 서울의 임대주택에서, 나머지 3일은 지방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사는 형태가 보편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젊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자유롭게 전원주택을 짓고 살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정부가 읍면지역에 국한해서라도 1가구 2주택을 허용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염재호 SH미래도시포럼 대표는 “우리들이 평소 존엄사에 대해 자주 얘기하지만 ‘존엄생’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며 “정치나 관직에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결국 존엄하게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박해묵 기자]

▶“정치나 관직 맡으면 존엄하게 못 살것 같아 생각 없다… 남은 인생 재미있게 살겠다”= 염 대표는 올해 2월 정년을 맞았다. 명예교수인 지금 정규강의는 하지 않지만 최근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특강을 준비 중이다. ‘정치권이나 공직에 대한 제안이 많을 것 같다’는 질문에 “유혹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전혀 관심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 퇴임 강연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염 대표는 “마침 그 때 독일 사람이 쓴 책을 하나 봤다. 우리들이 평소 존엄사에 대해 자주 얘기하지만 ‘존엄생’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며 “정치나 관직에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결국 존엄하게 못 살 것 같다”며 웃었다.

최근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힘들겠지만 꿈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염 대표는 이를 위한 한 가지 팁으로 시골에서 마음에 드는 땅이 있으면 미리 조금씩 사놓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깔더라도 점점 자신이 원하는 집으로 만들어 가라는 것이다. 그 역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전원주택을 짓고 25년 동안 살고 있다.

염 대표는 “시골집이 있으면 언제든지 갈 데가 있다는 안도감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서 “인생을 사는 짧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기면서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리=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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