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독도는 한국령’ 반박불가 증거들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비준 당시 일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독도를 한국 땅으로 그린 ‘일본영역참고도’를 공개해 학계의 주목을 받은 정태상 박사가 독도영유권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명백한 근거들을 담은 책 ‘독도 문제의 진실’(만권당)을 펴냈다.

조선 숙종 때부터 샌프란시스코조약 때까지 공식기록들을 꼼꼼하게 살핀 책은 일본의 억지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설 무기라 할 만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왜곡의 출발점은 공식 기록으로는 1947년 6월 외무성이 발간한 소책자 ‘일본의 부속 소도 Ⅳ:태평양 소도서, 일본해 소도서’다.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에는 한국명이 없다”“한국의 지도에 독도는 나타나지 않는다”“독도는 오키도로부터 86해리 떨어져 있다”는 등의 왜곡된 내용을 담은 이 문제의 소책자는 연합국최고사령부와 미 국무성에 배부됐다.

그 후, 1951년 9월8일 일본의 주권을 보장한 대일평화조약, 일명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체결되는데, 영토 조항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명시돼 있고 독도가 빠져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대일평화조약의 일본 국회 비준 동의 당시 일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도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영역참고도’가 바로 그 지도. 조약 조문에는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지도를 근거로 비준 동의한 것이므로 한국령임을 인정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1951년 6월 주한미군이 대한민국 정부의 장면 총리에게 독도 폭격 훈련장 사용 신청을 낸 것도 한국령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독도에 대한 분명한 지리적 지식과 영유권 인식이 기록된 것은 ‘숙종실록’이다. 숙종 때 안용복을 비롯한 조선 어부들이 울릉도에서 일본 어부와 충돌한 사건은 양국간 외교 분쟁으로 이어졌고, 오랜 외교 교섭 끝에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는 조선 땅인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이런 인식은 ‘동국문헌비고’(1770), ‘만기요람’(1808)등으로 이어지며 그 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됐다. ‘숙종실록’의 기록은 일본 고문헌 ‘원록각서’‘인번지’를 통해 입증된다.

메이지 시대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의 문서인 ‘태정관지령’은 독도가 한국령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로 꼽힌다. 당시 관보격인 ‘태정류전’에 공시했는데, ‘태령관지령’은 그동안 은폐돼오다 1987년 일본 교토대 호리 가즈오 교수의 논문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다케시마문제연구회측은 ‘태정관지령’에 나오는 섬 ‘죽도외일도’는 독도가 아니라며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저자는 ‘태령관지령’의 부속문서에서 죽도외일도는 울릉도와 독도임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정관지령’‘태정류전’‘기죽도사략’‘죽도지서부’ 등 일본 고문헌에 등장하는 독도 관련 문구들,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보여주는 해군해도 제95호 ‘일본 혼슈·규슈·시코쿠 부조선’(1891) 지도와 해군해도 제21호 ‘조선전안’(1896) 지도,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돼 있는 ‘일본영역도 등은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독도논쟁과 관련, 국내 학계의 치부도 드러냈다.

일본측에 편향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은 한국 측의 과도한 영토내셔널리즘이 독도 문제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인식하면서 선전선동에 불과한 상대국의 주장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 여기는 반면, 자국 연구자에게는 엄격한 비판의 잣대를 갖다댄다고 비판한다. 독도를 반일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도 문제의 진실/정태상 지음/만권당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